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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라는 창을 통해 본 현대 한국 미술과 전통 문화 유산 <불이>전

-경제력과 문화력의 동행, 不二

전시명 : <불이(不二)-깨달음과 아름다움>
장 소 : 가나아트센터
기 간 : 2025.4.30-2025.6.29
글/ 김진녕


어느 문화권을 보더라도 역사 속의 종교문화 유물은 그 지역, 그 시대가 만들어낸 경제적 실천력과 인문학적 역량의 총합이다. 중세부터 르네상스 시기까지 지어진 유럽의 예수교 계통 사원과 그 안을 장식했던 회화류, 같은 시기 북아프리카나 이베리아 반도, 서아시아에 세워진 복잡하고 정교한 무늬로 가득한 사원과 화려한 무늬와 색으로 가득한 출판물, 잦은 전란을 겪었던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실물로 남아있는 전통문화유산에서 조선 중기 이후의 궁중 전각류를 빼면 대부분 종교 건축물이고 조각류나 회화류에서 종교계통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대적이다. 현대에 들어서도 종교기관에서 집행하는 대형 건설이벤트가 늘 논란이 될 정도로 종교로 몰리는 재물과 잉여력의 합은 여전히 과거처럼, 그 시대가 가진 포텐셜의 샘플로 통하고 있다.

가나아트와 가나문화재단이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고 있는 불교미술특별전 <불이(不二)-깨달음과 아름다움>(4.30- 6.29)전은 고려시대부터 현대 한국까지 한반도의 주류 종교였던 불교를 통해 꽃피었던 문화 역량의 물질적 유산을 보여주는 전시다. 깨달음과 아름다움이 둘이 아니듯, 경제력과 문화력도 둘이 아님을 역사적 유물과 현대 미술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박생광 <청담스님>, 1983, 종이에 수묵채색, 215 x 348 cm


한국 전통 회화를 대표하는 고려불화 두 점이 실물로 처음 공개되고 철불조각의 진가를 드러낸 고려철불, 조선시대 후반인 18세기의 조선 르네상스를 화려하게 증언하는 <심적암아미타극락구품회도>(1778) 같은 명품 문화유산부터 현대 한국의 산물인 권진규의 불교 소재 조각 작품과 20세기 후반 전통 미술의 현대화를 극적으로 보여준 박생광의 대표작 <청담스님>, 20세기 말 종교간 대화라는 시대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최종태의 <관음보살상>(길상사 관음보살상의 브론즈 모델), 김환기 최영림 이화자 박대성 김종구 오원배의 불교 모티브를 따온 회화와 윤광조의 분청, 김영원의 조각 등 70여 점이 소개됐다.


<관음ㆍ지장보살 병립도> 고려, 14세기 후반, 견본채색, 44.2 x 75.2 cm


이번 전시에서 처음 일반 공개에 나선 <관음·지장보살 병립도>와 <수월관음도>, 그리고 <영산회상도>(1560) 불화 3점은 단연 눈길을 끈다.

가로 44.2cm, 세로 75.2cm 크기의 <관음·지장보살 병립도>는 2008년 일본 내 고려불화 조사를 통해 존재가 처음 확인된 이후, 이번 전시를 통해 실물이 최초로 공개됐다. 왼쪽에는 머리에 두건을 쓰고 왼손에 석장을 든 지장보살, 오른쪽에는 보관부터 전신을 백색의 천의로 두른 관음보살이 나란히 서있는 구도가 독특하다. 이런 구도는 중국이나 일본 불화에선 찾아볼 수 없고 고려와 조선 초기 불화에만 등장하는 독자적인 양식이라고 한다.

불화 속 지장보살의 옷(가사)와 관음보살의 천의에는 고려불화의 특징이기도 한 연화당초원문이 들어가 있다. 이를 통해 이 작품이 14세기 후반에 제작됐다고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또 “작품 상단에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삼존불을 배치하고 그 밑에 두 보살을 병립시킨 구도는 기존에는 15세기 조선 초기 불화에서만 확인되었지만 이 작품의 등장으로 정토사상을 반영한 이러한 구도가 이미 고려 말에 등장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주최 측의 설명이다.


금동불감, 고려 후기, 금동, 28.4 x 16.4 x 31.2(h)cm


이 작품 속의 관음보살은 반투명한 ‘천의’ 대신 연화당초원 무늬가 들어간 백색의 불투명한 천으로 된 옷을 입고 있다는 점도 여느 고려불화 속 관음보살과 다르다. 이런 백의관음 도상은 1476년에 제작된 전남 강진의 무위사 극락전에 있는 <백의관음도>가 가장 이른 예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14세기 <관음·지장보살 병립도>의 등장으로 이 도상의 근원이 고려시대 말과 연속선상에 놓여있음을 알게 됐다.


<관음보살도(수월관음도)> 고려 14세기 전반, 비단에 수묵, 금니(견본채색), 99x55cm


이번 전시에 처음 실물로 공개되는 또 다른 고려불화인 <수월관음도>는 2006년 ‘동국대 건학 100주년 기념 특별전-국보전’ 도록을 통해 도판만 소개된 적이 있는 작품이다. 대개 고려불화 수월관음도는 좌측을 향해 반가부좌한 관음보살이 무릎 아래쪽에 작게 그려진 선재동자를 바라보는 구도를 취한다. 하지만 이 작품 속의 관음보살은 두 손을 앞쪽으로 모으고 두 다리는 결가부좌를 하고 머리를 약간 숙여 오른쪽 아래를 쳐다보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주최 측에서는 “연화당초원 무늬의 형식나 얼굴 묘사 양식을 종합할 때 14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수월관음도는 관음보살의 자세가 선종 불화, 특히 달마대사 도상과 비슷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채색을 절제하고 수묵선묘를 적극 활용한 점 역시 선종계 도상의 영향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 수월관음도는 전통적 도상의 틀을 벗어나 명상에 잠긴 듯한 관음보살의 정일한 모습을 구현한 작품으로 고려불화 표현 양식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라고 설명하고 있다.


<영산회상도> 1560, 비단에 수묵, 금니(견본채색), 101.6 x 60.3 cm


조선 초기 금니 불화인 <영산회상도>(1560)는 2024년 호암미술관 특별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에도 출품됐던 작품이다. 화면 하단 중앙에 남아 있는 금니로 쓰여진 화기를 통해 제작연도(1560년)와 발원자(성열인명대왕대비)를 확인할 수 있다. 발원자인 ‘성열인명대왕대비’는 조선 제13대 왕 명종의 모후인 문정왕후로, 조선시대 최대의 불교 수호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이 작품이 조선 왕실 발원 불화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는 점, 임진왜란 이전 조선의 문화역량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자주색 비단 바탕 위에 세필의 금선(金線)으로 정교하게 묘사된 <영산회상도>는 조선 초기 불화의 형식미와 세련된 필치를 간직하고 있다. 원래 일본의 개인 소장품이었으나 2016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국내로 환수됐다.


<감지금니 섭대승론석론> 권 제3, 충숙왕 6년(1319), 감지금니, 서울시 유형문화재


이번 전시에서 전시된 유물 중 제작 시기가 가장 이른 작품인 고려 제26대 왕인 충선왕(왕장, 1275-1325) 발원 <감지금니 섭대승론석론> 권축이 전시장 들머리에 놓여있다. 고려시대 말 원 간섭기에 만주 지역의 심양왕을 겸하는 한편 연경에 만경당을 세워 르네상스형 군주로 불렸던 충선왕은 ‘선왕 내외(충렬왕과 제국대장공주)와 아들 충숙왕을 비롯한 후대 종실의 안녕을 위해’ 이 사경을 발원했다고 한다.

이 외의 고려시대 유물로는 ‘금동불감’과 ‘상감청자’, 서울 지역에서 발견된 고려 초 10세기경에 제작된 ‘철조석가여래좌상’ 등이 불교에 집중됐던 고려시대의 문화적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철조석가여래좌상> 고려 10세기경, 무쇠, 88 x 56 x 115(h)cm, 서울시 유형문화유산   


현대 파트에선 사찰에 예불용 탱화를 제작한 경험이 있는 현대 작가의 작품이 눈에 띈다. 전통 채색 기법으로 한국화 작업을 하는 이화자(B.1943)는 2015년 서울 잠실 불광사에 걸린 신중탱화를 그렸다.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현대 회화작가인 오원배(b.1953)은 2012년 강화도 전등사 무설전에 후불화와 천장화를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렸다. 무설전의 불상은 조각가 김영원(b.1947)의 작품이고 무설전의 인테리어는 이정교가 했다. 전등사는 현대미술 갤러리를 운영할만큼 현대미술을 적극 끌어안고 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최종태(b.1932)의 <관세음보살>(1999)도 2000년 성북구 길상사 마당에 화강암으로 세워진 ‘현직 종교용 경배 대상’이다. 친분이 있던 길상사 창건주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 불교공부를 오랫동안 하다 카톨릭에 입문한 최종태, 20세기 후반 한국에서 오고간 종교간 대화, 이 모든 게 들어있는 조각작품이다. 최종태는 2017년 남양주 봉선사에 세워진 관세음보살상도 작업했다.


절집에 걸려있거나 설치된 현역 작품을 초대하는 대신 전시에선 현대 파트에서 불교에서 모티브를 따온 이화자와 오원배의 회화, 권진규와 최종태, 김영원의 조각, 이정교의 영상 작품을 통해 현대미술과 동행하고 있는 한국 불교의 현재를 보여주고 있다.


이 전시의 마지막 전시공간인 SPACE 97에는 조계종 종정이자 현역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성파 스님의 대형 ‘선예(禪藝)’ 작품 다섯 점도 선보이고 있다. 성파 스님은 국현 과천애서 열린 채색화 전시에 참여했고 예술의 전당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업데이트 2025.05.14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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