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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200년의 흐름 <새 나라 새 미술> 전

-조선 전기를 설명하는 세가지 색, 白 墨 金
-해외에서 온 조선 전기 회화의 풍성함

전시명 :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 간 : 2025.6.10-8.31
글/ 김진녕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 개관 2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 - 8.31)을 지난 6월 10일 개막했다. 조선 건국(1392년) 이후부터 임진왜란(1592) 발발 이전까지 15~16세기 200년 동안 등장했던 당대 미술의 대표작을 한자리에 모은 대규모 기획전이다. 도자, 서화, 불교 미술 등 당시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 691건(국보 16건, 보물 63건)이 출품됐다.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등 5국 24개 기관을 포함해 국내외 72개 기관에서 작품을 모았고, 이 중 23건은 국내 처음 공개된다.


이 전시는 지난 2020년 5월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에서 소규모 테마전으로 열었던《조선전기서화》의 확장판 격이다. 그때는 이번 전시에도 나온 이상좌의 <송하보월도>나 <호조낭관계회도>(보물 제870호), <기영회도>(보물 제1328호)와 안견풍의 사시팔경도, 궁중기록화격인 <서총대 친림사연도(瑞蔥臺親臨賜宴圖)>(덕수 5135) 등 십 여 점의 서화류로 꾸며진 작은 전시였다.


이상좌의<송하보월도>


반면 이번 전시는 현전하는 작품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임란 이전 회화류를 나라 밖에서 빌려오고 고려 말 이후 청자 붐이 쇠하고 분청사기와 백자가 유행하던 당시의 흐름을 보여주고, 조선 전기에 조성된 불교회화 작품과 목조각, 건칠 조각 등 불교미술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등 조선 전기라는 시대를 서화류에만 국한하지 않고 조각과 도자까지 넓혀 조선의 제도와 의식주생활 변화 등 총체적으로 담아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주최측에서는 크게 세 파트로 나뉜 이번 전시의 구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프롤로그격인 ‘조선의 새벽, 새로운 나라로’에서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발원하여 금강산에 봉안한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가 놓여있다. 이성계가 세운 나라는 유교제정일치국가였지만 그 열망은 불교식으로 하늘에 빌었던 것이다. 


1부 ‘백白, 조선의 꿈을 빚다’에서는 국가에서 도자기 제작소를 직접 관리한 조선 전기 도자 산업의 전모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분청사기와 백자가 전시되는 이 섹션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순백색 백자사발 세트 ‘천지현황’(白磁 天地玄黃 銘 鉢, 국보 제286호)를 비롯해 대형 전접시와 편병, 장군 등 백자애호가인 이건희 회장의 순백자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전 이건희 기증전에도 등장했던 천지현황이지만 이번 전시에선 모두 사발을 뒤집어 엉덩이쪽에 쓰인 天地玄黃을 관람객이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 코너에는 현전하는 단 한 하나의 백자 산뢰인 <백자청화철화 산뢰>(보물 제1056호, 리움 관리)도 함께하고 있다.


천지현황 (白磁 天地玄黃 銘 鉢, 국보 제286호)


2부 ‘묵墨, 인문人文으로 세상을 물들이다’에서는 조선 전기 사대부의 이상을 담은 서화를 소개한다. 조선 건국을 주도한 사대부가 애호한 그림과 글씨는 이 시대의 주된 시각 매체로 부상했다. 글씨와 그림에는 먹의 무궁무진한 표현력을 활용하여 이들의 생각과 정서를 은유적으로 드러냈다. 먹색의 깊은 농담처럼 조선에 스며든 사대부의 가치관과 취향을 소개한다.



3부 ‘금金, 변치 않는 기도를 담다’에서는 금빛 불교 조각과 금니화와 채색화 등 불교 회화 작품을 조명한다. 유교제정일치 국가의 시대가 됐지만 불교는 조선조 지배계급의 정치적 명분이나 이념과 관계없이 왕실과 사대부, 신분이 낮은 사람 등 모든 조선 사람의 기원과 바람에 언제나 응답하는 신앙으로 존재하며 끊임없이 이어진 불사를 통해 당대의 미감을 그림과 조각으로 남겼다.


에필로그격인 ‘조선의 빛, 훈민정음’ 코너는 전시장 출구에 자리잡고 있다. 현대에서 조선시대 최대 성과물로 꼽히는 훈민정음 반포(1443년) 3년 뒤 나온 <훈민정음 해례본>(1446년, 국보 제70호,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이 나와있다. 훈민정음, 즉 한글은 조선과 현대 한국을 잇는 가장 직접적인 통로이기도 하다.


 <훈민정음 해례본>(1446년, 국보 제70호,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2020년 조선 전기 서화 전에는 세종의 고손인 이암(1507-1566)이 그린 <모견도>(박물관 소장품 번호 덕수255)만 나왔지만 이번 전시에는 일본 민예관 소장의 <가응도>와 <화하구자도>, 리움이 관리하고 있는 <화조구자도>(보물 제1392호), 국박 소장의 <모견도>가 나란히 걸려서 일종의 이암 스페셜이 되고 있다. 이번 전시의 ‘전 이암’ 코너에는 작가 미상의 <가자쌍조도>(일본 후쿠오카시미술관 소장)도 나란히 걸려있다. 이 작품은 3주만 걸린 뒤 철수하고 그 자리에는 국내 개인 소장의 <전 이암필 초충도>가 걸린다. 이 두 작품은 화면에 가지라는 주인공이 있는 점이 공통적이고, 조연으로 등장하는 게 새 또는 나비라는 차이점이 있다. 전시도록에는 ‘표현방식이 동일하여 비슷한 시기로 추정된다’고 설명되어 있다. 이암 특집 코너란 얘기다.


유교제정일치국가를 실현하려는 성리학자들이 만주쪽에서 활동하던 지역군벌과 결합한 군사정변으로 세워진 조선에서는 고려시대의 기득권 그룹이었던 불교를 배척했고 화려한 장식미가 들어간 기물이나 그림도 멀리했다. 그림은 ‘잡기’였다. 그런데 이암은 제정일치국가인 조선에서 신과 같은 존재인 왕의 직계자손이다. 그리고 그는 유교사제그룹에서 경원시하는 사물의 형상, 색을 뛰어나게 구현하는(집착하는) 채색화를 그렸다. 이 괴리는 무엇일까. 이는 조선왕실의 대규모 불사 후원에서도 확인된다. 조선 전기에 이뤄진 대형 불사의 가장 큰 후원자였던 문정왕후(1501-1565)가 발원한 <약사여래삼존도>(1565년, 보물 제2012호) 가 이번 전시에 등장한다.


 <약사여래삼존도>(1565년, 보물 제2012호)


전시장 한쪽 벽에는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인듯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 인수대비(1437-1504)의 말을 붙여놨다.
“옛부터 유교와 불교는 서로 용납하지 못하지만, 부처를 다 없애지는 못할 것이다. 신하들이 부처를 배척하면서도 오히려 수륙재를 없애지 않는 것은 선왕을 위하여 명복을 비는 까닭이다.”(성종실록 117권 11년(1480년) 5월30일 인수대비가 내린 말)



왕의 안녕과 장수, 사후 평안이 유교 논리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문정왕후가 발원한 또다른 금니화 <영산회상도>(1560)는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불이>전에서 확인 가능하다.


<지장시왕도>(1586), 스오코쿠분지 소장 


이번 전시에는 뉴스로만 전해지던 해외 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불교회화를 포함한 조선 전기 회화 작품의 국내 최초 공개가 많다는 점도 한국 고미술 애호가를 설레게 하고 있다. 일본 야마구치현 모리박물관에서 빌려온 <산수도> 3폭은 20년 전 까지만 해도 중국 작품으로 분류됐지만 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풍속 장면, 건축 기단에 표현된 조선 건축의 단면 등을 지금은 학계에서 16세기 중반 조선 화원이 그린 것으로 본다.


 <지장시왕도> 부분


일본 스오코쿠분지 소장 <지장시왕도>(1586)는 화면에 등장하는 각각 인물의 표정이 코믹할 정도로 모두 생동감있게 표현된 작품이다. 일본 바인리지 소장의 <수월관음보살도>(1427)는 가채를 머리에 인 지위가 높아 보이는 여성이 시녀의 시중을 받으며 수월관음에게 기도하는 모습이 담겨있고 화기를 통해 두 명의 여성 발원자가 특정되는 작품이다. 



(좌)<산시청람도(山市晴嵐圖)>(미국 LA카운티미술관 소장) / (우)<연사모종도(煙寺暮鍾圖)>(일본 야마토분카칸 소장)


또 전기에 큰 유행을 했던 안견풍 화풍으로 그려진 소상팔경도 주제의 조선 전기 수묵화가 다수 등장한다. 특히 <산시청람도(山市晴嵐圖)>(미국 LA카운티미술관 소장)와 <연사모종도(煙寺暮鍾圖)>(일본 야마토분카칸 소장)은 전문가 사이에서 필치가 비슷해 애초에 한 세트였을 가능성이 큰 작품으로 여겨졌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한 전시 공간에 나란히 걸렸다. 이번 전시에는 이 글에서 언급한 작품 말고도 해외에서 온 16세기 궁중 장식화와 불교 회화 등 검색만 해도 한국어 정보가 줄줄 나오는 해외 소재 미술품이 다수 등장하고 있다. 해외에서 온 작품은 대부분 3주로 전시기간이 마감되고 대체 작품으로 교체된다는 점을 기억해둘 만 하다.


업데이트 2025.06.11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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