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 간 : 2025.6.17-8.10
글/ 김진녕
일본의 패망과 함께 찾아온 광복과 신생 대한민국의 출범, 그리고 일본과의 단교, 이어진 한국전쟁과 분단. 패망한 일본은 미군이 지배하는 군정을 거쳐 냉전시대 동아시아 지역의 블루팀 주요 거점으로 떠올랐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채택한 신생 대한민국이 일본과 국교 재개에 나서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뿐이었다. 그게 1965년 6월22일이었다.
올해(2025년)가 한일국교 ‘정상화’ 60주년이다. 음악과 문학, 미술 등 문화계에서는 십진법을 행사의 주요 모티브로 활용한다. 십진법에 육십갑자까지 겹치는 2025년이기에 양국 문화 교류 행사가 열리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미술계에서는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쿄국립근대미술관, 그리고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서 한일수교 60주년 기념 전시가 열리고 있다.
먼저 테이프를 끊은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6월 17일- 8월 10일).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3층 306호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일본 도쿄국립박물관과 공동으로 개최하는 전시로 두 기관의 소장품 62건을 중심으로 ‘일본미술의 외적 아름다움과 내면의 정서를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한다.
그 다음 타자는 7월 15일부터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의 신소장품 특별공개전 《컬렉션으로 보는 일한》이다. 이 전시는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의 자체기획으로 한일관계의 미묘함 등 등의 시선을 제거한 일본 자체의 눈으로 보는 한반도라는 소재와 한국계 화가의 작품이 등장한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한반도를 두 번 여행했던 가와세 하스이(川瀨巴水, 1883-1957)의 목판화 넉 점이 등장한다. 가와세 하스이는 우키요에를 근대에 되살리는 신판화 운동의 중심인물로 우리에겐 <조선팔경 (朝鮮八景)>과 <속조선풍경(續朝鮮風景)> 등을 제작한 인물로 알려져있다. 올해 서울 인사동에서 처음으로 로드쇼를 열었던 일본 마이니치경매에 가와세 하스이의 <지리산 천은사>가 출품되기도 했다.
일본이 되돌아보는 ‘일한 재수교 60주년전’에는 군국주의 시절의 선전선동화도 포함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일본 도쿄미술학교를 나와 식민지 조선에서 경성제이고보(경복고) 미술교사를 지낸 야마다 신이치(山田新一·1899~1991)는 우리 근대미술사의 화가인 정현웅(1911~1976)이나 심형구(1908~1962)를 제자로 키워낸 인물로 통하기도 하지만 단광회라는 친일 프로파간다 미술 단체를 꾸려 태평양전쟁에 나선 ‘조국’ 일본의 열렬한 응원부대로 활동한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 입장에서는 전형적인 전범이지만 야마다 신이치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항복한 뒤 일본으로 돌아가 점령군 미군정에 협력해 되살아난 끈질긴 생명력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무슨 재주를 부렸던지 미군정의 협조로 한국으로 되돌아와 서울역 창고에 감춰놓고 떠났던 태평양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프로파간다 미술품을 되찾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그때 가져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 일부가 이번 한일수교 60주년 기념 전시에 나온다. <새벽의 톈진부근 전투 暁明の天津附近戦闘>(1944)와 <인천 포로수용소의 영군과 오스트레일리아 포로병의 작업仁川俘虜収容所に於ける英豪兵の作業>(1943). 두 점 모두 일본제국의 패망 전 식민지로 삼고있던 중국 동북부와 한반도의 일본 제국군 활동상을 고무 찬양하는 그림이라는 것이 제목에서부터 드러난다.
이런 식으로 일본 작가가 패망 이전의 ‘제국 시절’을 노스탤지어적인 시선으로 보는 작품과 함께 일본에서 활동하는 이우환이나 곽덕준의 작품도 등장하고 있다. 특히 일본 내에서도 이차대전 뒤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하나로 주목을 받았지만 1960년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떠난 뒤 생사조차 불분명해진 조양규(曹良奎, 진주 출신, 1928 - ?)의 작품도 눈여겨 볼 만하다. 군국주의나 전체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환멸을 느낀 재능많은 작가가 머릿 속의 이상을 쫓아 제발로 자칭 공산주의 국가로 갔지만 존재조차 부정당하고 완전하게 숙청당한 현실은 20세기 한반도를 관통하는 비극이기도 하다.
가와세 하스이(川瀬巴水)「朝鮮八景」중 <경성 경회루>1939년, 목판화
일본이 되돌아보는 ‘일한 재수교 60주년전’에는 군국주의 시절의 선전선동화도 포함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일본 도쿄미술학교를 나와 식민지 조선에서 경성제이고보(경복고) 미술교사를 지낸 야마다 신이치(山田新一·1899~1991)는 우리 근대미술사의 화가인 정현웅(1911~1976)이나 심형구(1908~1962)를 제자로 키워낸 인물로 통하기도 하지만 단광회라는 친일 프로파간다 미술 단체를 꾸려 태평양전쟁에 나선 ‘조국’ 일본의 열렬한 응원부대로 활동한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 입장에서는 전형적인 전범이지만 야마다 신이치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항복한 뒤 일본으로 돌아가 점령군 미군정에 협력해 되살아난 끈질긴 생명력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무슨 재주를 부렸던지 미군정의 협조로 한국으로 되돌아와 서울역 창고에 감춰놓고 떠났던 태평양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프로파간다 미술품을 되찾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그때 가져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 일부가 이번 한일수교 60주년 기념 전시에 나온다. <새벽의 톈진부근 전투 暁明の天津附近戦闘>(1944)와 <인천 포로수용소의 영군과 오스트레일리아 포로병의 작업仁川俘虜収容所に於ける英豪兵の作業>(1943). 두 점 모두 일본제국의 패망 전 식민지로 삼고있던 중국 동북부와 한반도의 일본 제국군 활동상을 고무 찬양하는 그림이라는 것이 제목에서부터 드러난다.
야마다 신이치 <새벽의 톈진부근 전투> 1944년, 캔버스에 유채, 129.0×191.0cm
야마다 신이치 <인천 포로수용소의 영군과 오스트레일리아 포로병의 작업> 1943년, 캔버스에 유채 110.0x144.0cm
이런 식으로 일본 작가가 패망 이전의 ‘제국 시절’을 노스탤지어적인 시선으로 보는 작품과 함께 일본에서 활동하는 이우환이나 곽덕준의 작품도 등장하고 있다. 특히 일본 내에서도 이차대전 뒤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하나로 주목을 받았지만 1960년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떠난 뒤 생사조차 불분명해진 조양규(曹良奎, 진주 출신, 1928 - ?)의 작품도 눈여겨 볼 만하다. 군국주의나 전체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환멸을 느낀 재능많은 작가가 머릿 속의 이상을 쫓아 제발로 자칭 공산주의 국가로 갔지만 존재조차 부정당하고 완전하게 숙청당한 현실은 20세기 한반도를 관통하는 비극이기도 하다.
조양규《밀폐된 창고密閉せる倉庫》1957
야마다 신이치의 선전선동미술이 동아시아에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태평양전쟁까지 일으켜 일본을 전범국가로 만든 쇼와(昭和)시대 일본의 전체 모습을 되새김하거나 일제시대 한반도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사료적 가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일한 수교’ 축하 아이템으로는 맞지 않아 보인다. 일본 패망 이전 한반도의 가해자였던 일본이 지나간 시절을 나른하게 회상하거나 냉전시대 쇼케이스 한복판으로 영문도 모른 채 멱살잡혀 끌려나간 한반도를 강건너 불보듯 보는 시선을 맹색이 ‘일한 수교 60주년 기념’ 전시라면서 공공미술관에 진열하는 것이 열도의 현재형 속내라는 점을 되새기게 만들 뿐이다.
그래서인지 국립중앙박물관이 일본국립박물관과 공동기획한 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 전시는 철저하게 근대 이전 일본 미술품에서 드러나는 일본적인 미감에 집중하고 있다.
기존 국립중앙박물관의 일본실이 ‘칼과 차’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일본문화를 풀어내는 전시를 하고 있다면 같은 층에서 열리는《일본미술, 네 가지 시선》은 미술을 넘어서 전통의상과 전통 연희, 일본의 전통 시가인 와카(和歌) 등 생활 속 깊숙이 박혀있는 미감을 유기적으로 엮어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일본 관련 유물과 도쿄국립박물관이 출품한 일본 중요문화재 7건을 포함해 40건을 선보인다. 이 가운데 38건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유물이다.
시각적으로 두드러지는 것은 네 개의 섹션으로 구분된 전시에서 각 섹션마다 일본 전통 의상을 주요 모티브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이중 <가을풀무늬 고소데(소맷부리가 짧은 기모노)>(일본 중요문화재)는 일본 장식 화풍의 대가로 알려진 에도 시대의 화가 오가타 고린(尾形光琳, 1658~1716)이 직접 가을풀무늬를 그려 넣은 옷으로, 도쿄국립박물관의 대표 전시품이다. 이 밖에 다도 도구인 <‘시바노이오리’라 불린 물항아리>(일본 중요문화재), 일본의 전통 시가인 와카(和歌)를 지을 때 사용했던 <마키에 다듬이질무늬 벼루 상자>(일본 중요문화재), 전통 무대 예술인 노(能) 공연에 사용된 <노 가면 ‘샤쿠미’>(일본 중요문화재) 등 일본 전통 문화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주요 소장품이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오가타 고린 <가을풀무늬 고소데>에도 18세기, 일본 중요문화재
박물관 측에서 밝히고 있는 이번 전시의 얼개를 보자.
“이번 전시에서는 일본미술의 안과 밖, 즉 내면에 깃든 정서와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네 가지 시선을 소개한다. 그간 일본의 미술사학자들이 쌓아 온 논의를 바탕으로, 일본미술이 지닌 네 가지 특징을 렌즈로 삼아 일본미술을 폭넓게 살펴본다.
전시 1부의 소제목은 ‘첫 번째 시선 – 꾸밈의 열정’이다.
일본에서는 예부터 사물과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는 ‘가자리(飾り)’ 즉 꾸밈의 미의식이 발달했다.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92)에 특히 꾸미는 문화가 발달하여, 귀족들은 여러 색으로 물들인 옷을 겹쳐 입고, 계절에 맞추어 각종 장식품과 가구, 병풍 등으로 공간을 호화롭게 장식하여 일상에 특별함을 더했고 화려한 장식성이 돋보이는 일본미술의 토대가 되었다.
선사시대의 토기 중 장식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조몬 토기부터, 17세기 이후 활발히 만들어진 채색 자기(이마리 자기), 금은 가루로 장식한 마키에(蒔繪) 칠기, 금박 위에 화려한 색으로 그림을 그린 병풍, 장식적인 서체로 쓴 서예 등의 유물이 등장한다.
전시 2부의 소제목은 ‘두 번째 시선 – 절제의 추구’이다.
화려한 꾸밈의 반대편에는 일본미술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인 절제의 미의식이 공존하고 있다. 다만 일본미술의 절제미에는 검소함이나 소박함과는 다른 섬세한 취향과 의도가 깃들어 있다. ‘갖추지 않은 듯 보이는 아름다움’으로 일본 다도인의 사랑을 받았던 다도 도구가 소개되고 있다. 찬란한 금빛 장식으로 성안을 가득 채운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安土桃山時代, 1573~1603)의 무장들은 거칠고 투박한 찻잔을 아름답게 여기며 소중히 간직했다.
이 섹션에서는 간결한 멋의 칠기와 옷에서 일본미술 특유의 절제된 미감을 살필 수 있다.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1392~1573)부터 사찰 공방에서 제작한 붉은 칠기는 실용성과 견고함을 강조했으며, 에도 시대(江戶時代, 1603~1868)에는 사치 금지령으로 단정하고 간결한 옷차림을 세련된 멋으로 여겼다. 물론 에도 시대를 대표하는 전통 의상도 소개되고 있다.
전시 3부의 소제목은 ‘세 번째 시선 – 찰나의 감동’이다.
주최측에서는 일본 문화의 기저에 자리잡고 있는 ‘아와레(あはれ)’ 정서를 내세우고 있다. 아와레는 벚꽃이 피고 지고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듯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을 바라보며 아쉬워하면서도 그 순간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애잔한 정서를 의미한다.
아와레의 정서는 일본 고유의 시가인 와카(和歌)나 11세기 초의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와 같은 고전 문학에서 특히 돋보인다. 미술에도 다양하게 표현되었는데, 특히 한 해가 저무는 가을에 잠시 꽃을 피우는 가을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아와레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전하는 소재로 사랑을 받았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8세기의 『만요슈(萬葉集)』에는 가을에 꽃을 피우는 일곱 가지 풀로 싸리, 억새, 칡, 패랭이꽃, 마타리, 등골나물, 도라지를 읊은 시가 수록되어 있으며, 미술에도 이 일곱 가지 풀이 자주 등장한다. 전시에서는 가을풀이 묘사된 그림, 복식, 공예 등 미술품과 함께, 아와레를 표현한 문학 작품과 공연도 소개한다. 전시장에서는 인터랙션 미디어를 통해 와카 속에 표현된 아와레를 살필 수 있다. 전시장에 놓인 탁상형 미디어에 사각패널을 꼽으면 각 패널마다 유명 와카의 구절이 투사되는 등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전시 마지막인 4부, ‘네 번째 시선 – 삶의 유희’에선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 유희인 가면극 ‘노能’가 주요 모티브다.
비극적 서사를 가진 극인 노(能)의 막간에는 일상적인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다룬 교겐(狂言)이라는 또 다른 극이 상연되었다. 이처럼 일본미술에는 ‘아와레’의 마음과 함께, 유쾌하고 명랑한 ‘아소비(遊び)’의 정서가 공존한다. 일본어로 ‘놀이’를 의미하는 아소비는 미술에서는 현실을 유쾌하게 바라보고 형식을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하며 표현하는 태도로 확장된다.
이 섹션에는 노에 등장하는 가면 등 미술 속 유희를 살펴보는 한편, 미술 그 자체를 유희로 여겨 놀이하듯 빚고 그린 미술품이 소개된다. 에도 시대의 다색목판화인 우키요에(浮世繪)는 놀이와 여가를 즐기던 당대 일본인의 일상이 생생히 담겨있으며, 우키요에를 사서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에도 시대 사람들이 즐긴 유희의 하나였다. 전통 수묵화의 틀에서 벗어나 먹의 번짐과 즉흥성을 활용해 자유로운 회화 세계를 펼친 화가 이토 자쿠추의 <수묵유도권>에서는 그림 그리는 것을 놀이처럼 여긴 화가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수묵유도권> 부분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일본 관련 최신 소장품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국박 소장품 22건 중 21건이 2000년대 이후에 입수한 것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에는 일본미술사를 대표하는 작가인 혼아미 고에쓰(本阿彌光悅, 1558~1637), 도슈사이 샤라쿠(東洲齋寫樂, 생몰년 미상), 이토 자쿠추(伊藤若冲, 1716~1800), 나가사와 로세쓰(長澤蘆雪, 1754~1799) 등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이 전시의 일본쪽 댓구는 내년 2월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을 협조받아서 꾸미는 특별전 <한국의 보석상자>가 준비 중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