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광복 80주년 기념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
장 소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기 간 : 2025.08.14.-11.9.
글/ 김진녕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전이 시작됐다. 부제는 ‘광복 80주년 기념’.
전시는 이상범, 김환기, 유영국, 오지호, 김정현, 이응노, 윤중식 등 한국 근현대 미술가 75명이 그린 1920~1980년대의 풍경화 210여 점과 아카이브 50여 점으로 꾸려졌다. 전국 각 지역에서 활동한 작가가 그린 그 시절의 지역 소재 풍경화가 그 시대의 우리 땅과 거기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신석필 <강변의 가족들> 1959, 캔버스에 유화물감, 137x227cm, 대구미술관
전시는 덕수궁관 1,2층의 네 개의 방에 나뉘어 펼쳐져있고 각 방마다 4개의 이름을 붙였다. ‘향토(鄕土)’, ‘애향(愛鄕)’, ‘실향(失鄕)’, ‘망향(望鄕)’.
허건 <부여소견> 1938, 종이에 먹, 색, 101x225cm, 부국문화재단
'향토' 섹션에는 ‘빼앗긴 땅’이란 부제가 붙어있고 일제강점기 시대를 보여준다. 전시장 들머리엔 정지용의 시 <향수>(1923)가 벽에 프린트되어 있고, 이상범이 그린 열 폭 병풍 <귀로>(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1937)가 펼쳐져있다. 20세기에 한국인들이 ‘고향’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연관검색어처럼 따라붙는 시각이미지와 글귀를 응측시켜 놓은 듯한 구성이다. 이 ‘전형성’에 사실은 그 시대의 분위기와 그 시대 대중의 선택이 숨어있다. 그 시절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서 아무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던 것. 이어 평생을 대구에서 활동한 서동진(1900-1970)이 그린 1920년대 눈 온 날의 풍경과 1927년 여름 어느날 북악산이 보이는 남산 아랫도리쯤에서 김주경이 그린 경성 풍경화와 오지호의 풍경화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상범 <귀로> 1937, 종이에 먹, 색, 135x445cm,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고향, 향수’ 등의 수식어로 꾸며진 이 도입부에 한국 근대미술사의 풍경이 숨어있다. 이상범의 <귀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중국 내륙의 침식 지형을 ‘산수’라는 이름으로 임모하며 ‘사의寫意’를 내세우던 조선 후기 문인화류와 완전히 다른 접근방식의 ‘풍경화’이기 때문이다. 이상범은 고산준령에 기암절경이 펼쳐진 산수가 아니라 한반도에서 흔히 보이는 높은 산을 원경으로 깔고 비산비야의 오르막길을 농사꾼과 일소가 터덜터덜 걸어오르는 풍경을 묵음처리된 다큐처럼 담담하게 그려냈다. 노동과 상관없이 한가하게 물만 바라봐도 생활이 되는 고사高士도, 시중드는 하인도 없다. 대신 별 대수롭지 않은 풍경과 결코 부의 근원일리가 없는 초가집이 화면을 차지하고 있다. 명산대찰과 명승지를 그리지 않은 이 실사풍의 산수화는 확실히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알리고 있다.
1909년 도쿄미술학교 1호 입학생이 됐던 고희동이 깃발을 꼽은 이후 미미하던 서양화쪽의 활동상도 1930년대쯤부터는 국내활동이 본격화된다. 조선에서 일본 도쿄미술학교로 유학간 1,2,3호 유학생 고희동(1886-1965)과 김관호(1890-1959), 김찬영(1889-1960)은 1900년대 초 조선에서 최초로 서양화를 배운 선발대였지만 이들은 귀국 뒤 모두 약속이나 한듯 1920년대부터 서양화의 납작한 브러시를 꺾었다. 고희동만 애초 출발지였던 동양화가로 활동했을 뿐이다. 이는 다른 말로 1910-20년대 한반도에서 서양화에 대한 시장 수요가 거의 없었고, 사회적 평판도 높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오지호와 김주경은 1920년대 후반 도쿄미술학교에 입학해, 1930년대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펼쳤고 이들은 해방 뒤에도 각각 남과 북에서 각각 풍경화가와 프로파간다미술 생산자로 생을 마쳤다.
전시는 한국근대미술의 이런 풍경을 ‘향수’라는 단어로 1900년대 초반의 일제 강점기부터 분단, 한국전쟁과 그 직후인 20세기 중반의 이산가족 풍경까지 보여준다. 한국화 파트는 시대상 자체가 19세기 패러다임에 붙들려있었다는 점을 감안해서인지 이상범과 변관식, 이응노, 허건, 허백련 등 수묵담채쪽의 작품에 집중돼 있다. 물감 자체를 알알이 올려 보리알의 질감을 그대로 구현한 김정현(小松, 1915-1976)의 <풍경>(1940년대, 부국문화재단 소장)이 전시 라인업에서 이질적으로 느껴질만큼 채색 쪽의 작품은 제외됐다.
김정현 <풍경> 2폭 병풍, 1940년대, 종이에 먹, 색, 각 폭 168x94cm, 부국문화재단
주최측이 설명한 전시 얼개는 다음과 같다.
1부 ‘향토(鄕土) - 빼앗긴 땅’에서는 일제강점기 우리 땅을 그린 각 지역의 풍경화를 통해 제국주의시대 우리 땅에 대한 인식을 살펴본다. 이 시기 ‘향토’는 일본의 식민주의적 시각으로 조선을 문명에 물들지 않은 평화롭고 순수한 전원의 풍경으로 표현하는 ‘향토색’회화가 유행과 동시에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 대구‘향토회’, 부산 ‘춘광회’, 광주 ‘연진회’, 제주‧호남 화단 등 각 지역에서 활동한 화가들의 풍경화는 각기 다른 풍토와 경관을 보여준다.
2부 ‘애향(愛鄕) – 되찾은 땅’에서는 광복 이후 예술가의 작품세계에서 주요한 모티브가 된 ‘고향’을 살펴본다. 고향 경주의 풍경화를 남긴 손일봉, 해방 직후 일본에서 귀국해 고향인 마산 앞바다의 활기찬 기운을 화폭에 담은 문신, 해방 전후 고향 홍성과 인근 지역의 풍광을 수묵으로 담은 이응노, 고향 신안 안좌도의 푸른 섬과 하늘, 바다에 비친 달을 모티브로 한국적 모더니즘을 실현한 김환기, 고향 울진의 산 지형을 꾸준히 탐구한 유영국, 통영의 풍광에서 독자적인 조형을 찾아낸 전혁림, 고향 제주에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발견한 변시지 등이 소개된다.
3부 ‘실향(失鄕) – 폐허의 땅’에서는 전후 폐허의 현장을 그린 작품이 소개된다. 이종무의 <전쟁이 지나간 도시>(1950), 도상봉의 <폐허>(1953), 신영헌의 <평양 대동교의 비극>(1958), 이수억의 <6.25동란>(1954), 남관의 <피난민>(1957) 등은 전쟁 직후의 황폐한 도시 풍경과 고통의 기억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이만익의 <청계천>(1964), 전화황의 <전쟁의 낙오자>(1964)는 전쟁기 피난촌을 배경으로 궁핍과 절망의 시대를 드러내고 있다. 이 시기 한국 작가의 작품은 전쟁의 잔혹하고 피비린내 나는 현장의 고어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품이 없다는 점이다. 대신 폭격받아 무너진 잔해나 고개를 떨군 군상이 등장한다.
4부 ‘망향(望鄕) - 그리움의 땅’에서는 전쟁 이후 분단으로 인한 실향, 이산의 아픔을 품은 채 ‘그리움의 정서’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작가와 작품들을 다룬다. 작가들은 작품에 향토의 서정을 환기시키는 모티프들을 등장시키고 고향의 모습을 낙원의 이상향의 모습으로 그려내며 그리움을 달랬다. 가족과 고향을 상실하고 고독과 소외, 빈곤과 서러움 속에서도 이상향의 고향을 그린 윤중식의 <봄>(1975),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월남한 박성환(1919-2001)의 <망향>(1971), 황해도 출신으로 월남해 대구에 정착한 신석필(1920-2017)의 <강변의 가족들>(1959), 최영림의 <봄동산>(1982) 등은 ‘강제 이산’이라는 폭력이 어떻게 예술이라는 형식으로 기록됐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선 요즘 미술시장에서 문자추상으로만 마케팅되고 있는 이응노가 1940년대에는 인기높은 수묵 풍경화가였다는 점을 일깨우는 10여 점의 1940년대 풍경화와 전후 폐허가 된 서울 풍경 석 점을 만날 수 있다. 또 1930-50년대 제주지역에서 활동했던 김인지, 대구 위주로 활동한 서동진 등 20세기 중반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미술활동의 지역별 성과도 볼 수 있다.
이응노 <6.25전쟁> 1950년대, 종이에 먹, 색, 58.3x73.2cm, 이응노미술관
전시는, 20세기 전반부터 중반까지, 일제 강점과 분단, 한국전쟁과 이산까지, 한여름 무더위의 가뭄처럼, 불볕만 쏟아지던 시기의 한국 근대미술사를 ‘고향’이란 키워드로 묶어놨다. 여기 놓여있는 작품이 그 시절의 전부가 아닌 일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볼만한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