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다정한 마음, 고독한 영혼:한국 근현대 거장의 삶과 예술
장 소 : 노원아트뮤지엄
기 간 : 2025.8.13-2025.10.16
글/ 김진녕
서울 노원문화예술회관 노원아트뮤지엄에서 《다정한 마음, 고독한 영혼 : 한국 근현대 거장의 삶과 예술》전(8.23-10.16)이 열리고 있다.
권진규 <고양이> 1960년대, 테라코타에 채색, 23x38.5x28cm, 국립현대미술관
채용신(1850-1941)부터 천경자(1924-2015)까지 20세기 전반과 중반에 활동한 12명의 작가의 작품 중 국립현대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박수근미술관, 이응노미술관, 이중섭미술관, 장욱진미술관 등 공공미술관과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50여 점을 모아 조명하고 있는 전시다. 전시에 등장하는 12명의 화가는 채용신, 김은호(1892-1979), 이상범(1897-1972), 변관식(1899-1976), 이응노(1904-1989), 오지호(1905-1982), 박수근(1914-1965), 이중섭(1916-1956), 장욱진(1917-1990), 박래현(1920-1976), 권진규(1922-1973), 천경자 등이다.
변관식 <진양성> 병풍, 1957, 종이에 먹과 색, 138x51.5(x2) cm, 138x60(x4) cm, 국립현대미술관
조선시대는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조선은 임진왜란(1592)- 정묘호란(1627)- 경신대기근(1670-1671)이라는 궤멸적 재앙을 맞이했지만 살아남았고 18세기 영조 치하에서 잠깐의 르네상스기를 누리면서 자체적인 근대를 맞이할 씨앗을 발아시켰지만 영조의 사망 이후 경제적으로는 우하향 그래프가 이어졌고, 정치 사회적으로는 쇄국과 복고 반동을 고수하다가 1910년 한일병탄으로 나라 자체가 소멸됐다. 전시에 등장하는 12명의 화가 중 채용신부터 오지호까지 6인은 조선이 망하기 전에 태어났고, 박수근부터 천경자까지 6인은 일제강점기에 식민지인으로 태어났다. 채용신은 조선인으로 태어나 해방 전에 별세했고, 나머지 11인은 모두 일제강점기와 해방, 분단, 한국전쟁이란 17세기에 버금가는 대환란의 시대를 살아내야 했다.
그래서 전시명 처음에 등장하는 ‘다정한 마음. 고독한 영혼’이란 수사를 다시 쳐다보게 된다. 전시에 등장한 대환란기를 살아내야 했던 12명의 화가를 힘들고 고독하게 만들었던 사유는 여러가지로 짐작된다. 체제의 급변, 이념적인 갈등, 분단과 전쟁, 식민청산 등 경제적인 상황, 전쟁 후유증, 개인의 우울 등 여러가지가 있었을 것이고, 어떤 것은 둘 셋씩 짝을 지어 작가의 영혼을 흔들었을 것이다.
채용신 <남성초상> 1933, 비단에 채색, 111x58.5cm, 미술관 솔
1901년 고종의 초상을 그려서 조선이란 시스템 안에서 화가로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오르며 군수라는 벼슬까지 했던 채용신은 1906년 통감부가 들어서면서 낙향해 전주 쪽에서 초상화가로 활동한다. 그 시절 그가 그린 시골 노인의 초상에는 이전 시대에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시대의 서명이 보인다. ‘前대한국시대 종2품 채석지’란 서명은 그가 시골에 살면서 돈 많은 노인들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기는 하지만 정식으로 중앙 관리를 지낸 근본 있는 화가라는 자긍심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가 향리에서 그린 초상화는 망한 왕조의 권위 체계를 상징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기도 하다. 초상화 속 주인공은 대개, 그려질 당시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웠던 망한 왕조의 관리 옷(흉배가 포함된)을 입고 있다. 조선 특권층의 전유물이 평민 사이에 급속히 사용되어 가는 현상은, 일월오봉도의 민화 버전 일월부상도가 민간에 보급되고, 평민의 결혼식에서 신부에게 왕실 여성의 대례복을 입히는 '전통'이 실은 19세기의 유산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국가유산청의 홈페이지에는 “(여성용 혼례복인)활옷의 복식 명칭은 궁중 혼례 관련 기록에는 나타나 있지 않고, 국문 소설이나 신문 기사 등 한글로 출판된 근대 기록 중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고 나와있다. 실제로 현전하는 혼례복은 일러야 19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이다. 19세기 조선의 왕권이 흐트러지면서 왕실전용이던 일월오봉도나 곽분양행락도 같은 상징적인 그림이 민간으로 급속히 번져나간 것처럼, 지나간 시절 특권층의 상징이던 흉배 달린 관복을 거리낌 없이 입고 ‘기념 사진’(초상화)을 남기는 것은 전환기에 등장한 ‘새로운 유행’일 가능성이 크다.
채용신이 19세기의 유산으로 급변한 20세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면, 전시에 등장하는 그 이후 세대는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인 것이 ‘일본식 근대화’라는 공격을 받거나 ‘이념’이란 괴물에 잠식된 세력 싸움의 소모품이 되는 신세로 전락하기도 했다.
전통 채색화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고종과 순종의 어진을 그렸고, 1920년대에 화재로 인한 창덕궁 보수공사 때 벽화를 그렸던 김은호는 해방 뒤 친일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김은호가 북종화 계열의 채색화 그룹의 구심점인 낙청헌(絡靑軒) 화숙을 통해 후배를 길러냈다면 이상범은 청전화숙을 통해 수묵화 계열의 후학을 길러냈다. 두 사람 모두 사후에 일제강점기 때 일본제국의 전쟁을 정당화하는 프로파간다 작품을 그렸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이상범은 해방 뒤 화가이던 아들이 월북하는 등 분단의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김은호 <향로> 1960, 비단에 채색, 115x58.5cm, 이당기념사업회
수묵과 채색에 구애받지 않고 활동하면서 일본에서도 그림을 배워오기도 한 이응노는 한국전쟁 뒤 프랑스 파리로 활동 본거지를 옮기는 등 1960년대에 추상이란 새로운 시각 이미지를 가장 열정적으로 탐구한 작가다. 다만 그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보면 동백림 사건에 연루된 분단의 피해자이자 유명 피아니스트 납치 미수 사건에 연루된 가해자 측면도 있는 등 복합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전통 수묵에서 출발해 파리에서 추상화가로 생을 마감한 그는 20세기 한국 분단과 한국 근대미술의 흐름을 자신의 삶 안에 중첩시켰다.
이응노 <군상> 1986, 한지에 수묵담채, 134x273cm, 광주시립미술관
이번 전시에 등장한 작가 중 전시 제목인 ‘다정한 마음, 고독한 영혼’이란 말에 즉각적으로 이란 말에 즉각적으로 대응시킬 수 있는 화가는 이중섭이다. 그는 분단과 전쟁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 그런 외부의 변화를 작가의 내면은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해방 이전 이북에서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 일본 유학까지 갔던 이중섭은 해방 이후 분단과 전쟁을 치르면서 경제적 기반이 완전히 상실돼 가족과 생이별한 채 쓸쓸하게 홀로 죽었다. 그는 가족과 사실상 생이별한 뒤 홀로 지내면서 전쟁의 궁핍 속에 구할 수 있는 최선의 재료 중 하나였던 담뱃갑 은박지에 그의 헤어진 가족을 연상시키는 아이의 웃음과 포옹 등의 이미지를 남겼다. 그래서 그의 그림이나 스토리는 이산가족 1세대가 다수 생존해있던 20세기 후반 한국 사회의 눈물샘이기도 했다. 전시장에는 이중섭의 은박지 그림과 함께 같은 시대를 살았던 박수근이 자녀를 위해 만들었던 전통 설화의 삽화 그림이 등장해 환란의 시대를 버텨냈던 ‘다정한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중섭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 1950년대, 종이에 유채, 잉크, 26.5x19.6cm, 이중섭미술관
이번 전시의 기획자인 미술사학자 조은정은 “이 전시는 인격체로서 작가를 만나게 하고, 작품의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를 고양시킨다. 거장의 작품을 만나는 일이 즐거운 것은 눈의 호사가 아니라 치열한 생을 대면하여 한순간에 다른 사람의 생을 들여다보고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암울한 그들의 지금을 이겨낸 미래가 내 눈 앞에 있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삶의 배움은 나의 삶을 가치로 향하게 하고 지금을 미래로 만들게 한다. 위대한 인간의 전형은 후대를 변화시키고, 예술에 평생을 바친 위대한 미술가들 또한 그들의 임무에 벗어나 있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