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2025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 문명의 이웃들
장 소 : 목포 문화예술회관, 목포 실내체육관, 진도 남도전통미술관, 진도 소전미술관, 해남 땅끝순례문학관, 해남 고산윤선도박물관 외
기 간 : 2025. 8. 30.(토) ~ 10. 31.(금)
글/ 김진녕
올해로 네 번째를 맞는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문명의 이웃들(somewhere over the yellow sea)》이 열리고 있다. 장소는 목포 남도예술문화회관, 목포실내체육관, 진도 남도전통미술관, 소전미술관, 해남 땅끝순례문학관, 고산윤선도박물관 등 6곳의 주 전시장 등에서 진행된다.
2018년 처음 열린 이후 지난 세 번의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 비엔날레 평가에서 늘 최하위권에 머물렀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 행사부터는 변화를 시도했다. 3회 때 190여 명에 달하던 참여 작가 수는 80여 명으로 줄이고 전시 장소도 목포와 해남, 진도로 압축시켰다. 올해 총감독을 맡은 이는 여러 국제 미술행사 경험이 있는 윤재갑 큐레이터다.
오숙환 <19 자연의 호흡1> 화선지에 먹, 212x73cm(x6폭), 2019
전시를 보고 난 뒤 느낌은 ‘문명의 이웃들’이라는 올해 국제수묵비엔날레의 주제가 동시대에 여러 문명권에서 발생하고 진행되는 현대미술에서 물에 녹는 안료인 먹과 채색 재료를 쓰거나, 블랙앤화이트의 색감과 질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미디어 작가까지 작가 선정의 폭을 넓힌 듯 보였다. 먹을 붓에 묻혀 종이에 이미지를 남긴다,는 좁은 의미의 수묵보다는 더 이상 매개체(medium)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재료가 무엇이든 필획성이 두드러지거나 흑과 백의 미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 인식은 석탄덩어리를 거칠게 다듬은 정현의 조각이나 한지조각을 접어 입체를 만드는 전광영의 설치 작품, 획의 미감을 대형 캔버스에 풀어놓는 이강소의 평면 작업, 손끝에 주사를 묻혀 투명한 유리판 위에 무수히 많은 지장을 찍은 장위(张羽, Zhang Yu)의 작품, 수묵의 필획으로 거친 파도를 만들어낸 팀랩의 애니메이션 등 기획자가 생각하는 동시대 현대미술과 수묵의 접점을 목포 문화예술회관과 목포 실내체육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지아나 <경계아래, 머무는 것들> 도자 혼합매체 순환펌프, 가변, 2025
팀랩teamLab <파도의 기억> 디지털 4채널 비디오, 2024
한국 회화사에 있어서 수묵의 위치와 당대성이 갖는 의미는 해남과 진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남에는 두 곳의 전시장이 있다. 고산윤선도박물관과 땅끝순례문학관. 두 곳은 바로 붙어 있어서 수고로움을 덜어준다.
윤선도(尹善道, 1587-1671)는 현재의 서울 종로5가와 서울대 병원 사이에 있는 연지동에서 태어난 인물로 해남 윤씨 종가댁에 양자로 들어갔다. 유교제정일치국가인 조선에서 남인과 노론과의 교리싸움을 빙자한 당파싸움이 절정일 때 세에 밀린 윤선도는 거의 평생을 유배생활을 했고, 완도군 보길도에 세연정을 짓고 <어부사시사> 등 수많은 시를 남긴 인물이다.
조선 중후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불리는 윤두서(尹斗緖, 1668-1715)는 윤선도의 증손이고 해남에서 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고산윤선도박물관에서는 공재(恭齋) 윤두서와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작품을 나란히 보여주는 <공재와 겸재> 전이 열리고 있다. 공재와 겸재, 두 분 모두 18세기 조선 르네상스의 미술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둘을 붙여놓은 것은 괜찮은 시도로 보이지만 전시 구성은 아쉬웠다. 물론 1704년작인 윤두서의 <세마도>(1704)는 윤두서의 작품 중 가장 큰 크기로 그동안 잘 공개되지 않던 작품이라 진품을 실견할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다만 겸재의 대표작인 <인왕제색도>를 영인본으로, 그것도 실물보다 더 작은 크기로 전시한 것은 갸우뚱할 만한 일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몰입형 전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깜깜한 전시실에 공재의 자화상 영인본과 자화상 영인본 사이즈에 맞춘 듯한 인왕제색도 축소영인본을 배치한 것은 기이한 느낌을 줬다. 여기에 울산박물관에서 빌려온 겸재의 소형 산수도도 아쉽기는 매한가지였다. 고산윤선도박물관이 선조의 유물을 관리하는 데 진심이라는 것은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회화 작품에 한해서 100% 영인본 패널로 채워진 전시장을 보면 굳이 여기까지 와서 볼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순도 100%의 온라인 전시관으로 바꾸고 지상 파트만 ‘녹우당 한옥정원 전시관’쯤으로 옥호를 바꾸는 게 더 어울린다 싶었다.
조선 중후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불리는 윤두서(尹斗緖, 1668-1715)는 윤선도의 증손이고 해남에서 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고산윤선도박물관에서는 공재(恭齋) 윤두서와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작품을 나란히 보여주는 <공재와 겸재> 전이 열리고 있다. 공재와 겸재, 두 분 모두 18세기 조선 르네상스의 미술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둘을 붙여놓은 것은 괜찮은 시도로 보이지만 전시 구성은 아쉬웠다. 물론 1704년작인 윤두서의 <세마도>(1704)는 윤두서의 작품 중 가장 큰 크기로 그동안 잘 공개되지 않던 작품이라 진품을 실견할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다만 겸재의 대표작인 <인왕제색도>를 영인본으로, 그것도 실물보다 더 작은 크기로 전시한 것은 갸우뚱할 만한 일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몰입형 전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깜깜한 전시실에 공재의 자화상 영인본과 자화상 영인본 사이즈에 맞춘 듯한 인왕제색도 축소영인본을 배치한 것은 기이한 느낌을 줬다. 여기에 울산박물관에서 빌려온 겸재의 소형 산수도도 아쉽기는 매한가지였다. 고산윤선도박물관이 선조의 유물을 관리하는 데 진심이라는 것은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회화 작품에 한해서 100% 영인본 패널로 채워진 전시장을 보면 굳이 여기까지 와서 볼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순도 100%의 온라인 전시관으로 바꾸고 지상 파트만 ‘녹우당 한옥정원 전시관’쯤으로 옥호를 바꾸는 게 더 어울린다 싶었다.
이진경 <훨훨-살아있구나!> 혼합재료, 종이에 먹과 채색, 가변, 2025
고산윤선도박물관 옆 땅끝순례문학관 전시관에는 윤씨 집안의 사위인 정약용의 한문 편지글 한 점, 홍푸르메나 로랑 그라소 등 한국화의 유산을 소재로 활용한 현대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진도의 두 전시장 남도전통미술관과 소전미술관에서는 20세기 한국화와 서예작품이 각각 선보이고 있다. 특히 남도전통미술관은 소치 허련이 세우고 소치의 손자인 남농 허건이 중창한 운림산방과 이웃하고 있어서 운림산방의 정취와 5대째 화맥이 이뤄지는 허씨 일문 화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소치기념관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 남도 예술의 이어짐을 실물로 볼 수 있는 현장이기도 했다. 남도전통미술관에 작품이 설치된 작가는 박생광, 이응노, 황창배, 송수남, 서세옥 등 20세기 후반 한국 전통 회화의 변혁을 시도했던 작가다. 박생광, 이응노, 황창배, 송수남은 전통 필묵의 유산에서 출발했지만 작가 인생 후반에 재료의 칸막이나 소재에 따른 분류를 모두 무의미하게 만든 동시대형 현대회화를 보여준 대표적인 작가다. 이들이 고민하고 모색했던 동시대성에 대한 응답 방식은 21세기 한국 전통 회화를 배운 뒤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작가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의 총기획자 윤재갑은 수묵비엔날레 홈페이지에서 이렇게 밝혔다.
“동아시아의 水墨은 기본적으로 물(水)에 녹는 안료라는 뜻이고, 서양의 油畫는 기름(油)에 녹는 안료라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이런 차이가 동서양 회화의 근본적인 특질을 형성해 왔다. 그래서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에서 규정하는 ‘수묵’에는 묵화와 채색화 모두가 포함된다.…
… 전세계에 200여 개가 넘는 비엔날레가 있지만, 아시아적 회화 미학을 대변하는 수묵비엔날레는 중국 심천과 한국 전남, 두 군데밖에 없다. 그나마 심천수묵비엔날레는 ‘당의 기획’과 ‘국가의 검열’이라는 두 가지 치명적인 한계로 인해 국제비엔날레로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이다. 그래서 동아시아 회화 미학을 전세계에 프리젠테이션 할 수 있는 국제수묵비엔날레는 전남이 유일하다. 세계 5대 비엔날레로 부상하며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있는 광주비엔날레가 여전히 서구미술계의 영향력 안에 있다면,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동아시아 미학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세계 유일의 비엔날레라는 점에서 이미 충분한 당위성과 명분을 확보하고 있다. 서구 주도 문화패권에 휩쓸리지 않고 동아시아 미학을 대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세계 문명의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비엔날레 개최의 명분과 당위성은 광주보다도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본다.”
올해 행사가 끝나갈 때쯤 주최측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전라남도가 국비 지원으로 부동산을 만들 수 있는 트로피를 하나 획득했다는 것.
“10월 21일 전남도에 따르면 ‘전남 국제수묵비엔날레아트센터’ 건립사업이 행정안전부 중앙재정투자심사를 통과함에 따라 상설 전시가 가능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전남도가 2024년부터 추진한 핵심 프로젝트다.”
국제수묵비엔날레아트센터는 목포시 용해동 일원에 총사업비 450억원을 투입해 연면적 7011㎡,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로 내년에 착공해 2028년 건립될 예정이라고 한다. 450억원은 중앙정부가 내려보내는 돈이다. 물론 이는 부동산건설 비용이고, 건물 공사비의 수십~수백 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완공 뒤 '정상적인 운영비'는 전남도가 어떤 식으로 감당해낼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래서 각 지자체마다 중앙정부가 돈을 내서 세우고, 중앙정부가 운영비를 꼬박꼬박 내주는 시설, 이를테면 국립현대미술관 지방분관 유치라는 ‘업적 트로피 쟁탈전’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