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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반짝이던 것에 대한 이해 《장엄과 창의: 한국 민화의 변주》 《화이도》

-해석과 변주, 민화의 경우

전시명 : 장엄과 창의: 한국 민화의 변주
장 소 : 갤러리현대 본관
기 간 : 2026.1.14~2.28
전시명 : 畵以道 The Way of Painting
장 소 : 갤러리현대 신관, 두가헌 갤러리
기 간 : 2026.1.14~2.28
글/ 김진녕

문자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은 지난 시절의 흔적을 알기 위해 흔히 음식이나 말을 들여다 본다. 수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같은 어군과 공유한 어근을 추적해 민족적 이동을 추정하거나, 새로운 음식 요소가 등장하는 시기와 기후 변화, 국제 정세의 변화를 엮어 사서에 담기지 않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추정하곤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의 축적은 시각이미지 세계에서도 어김없이 일어난다. 현대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장엄과 창의: 한국 민화의 변주》 전과 연계 전시로 보이는 갤러리현대의 《화이도畵以道》 전에서는, 한반도에 근대의 맹아가 자생적으로 싹튼 시기라는 18세기 이후 한반도 거주자의 상층부뿐만이 아닌 사회의 전체 구성원이 공유했던 ‘전통 그림’의 유산과 축적 과정, 그리고 20세기 후반 이후 전통적인 시각 유산이 어떻게 현대 회화의 요소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는지를 볼 수 있다.


《장엄과 창의》 전에는 18세기 후반과 19세기, 20세기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총 27 점의 작품이 1층과 2층에 걸쳐 걸려 있다. 1층 전시는 궁중회화의 유산이 강하게 감지되는 작품들로 구성되었는데 <쌍룡희주도>나 <호피도> 같이 정교하고 능숙한 붓 구사가 가능한 제작자가 만든 작품과 십장생도의 관습에 새로운 외부 유행으로 추정되는 크고 흰 새가 결합한 <봉황공작도>는 조선 말 19세기의 드라마틱한 외부환경 변화를 떠올리게 한다. 조선 말기 왕실에서마저 일본 풍 회화가 유행한 것은 사진과 기록으로도 남아 있다.



19세기 조선의 변화를 가늠하게 하는 1층 전시실의 또다른 작품은 19세기 후반 작품으로 추정되는 <매화책거리도>이다. 지난 2022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생의 찬미》 전에 출품됐던 것과 같은 작품이다. 책거리도에 꽃 핀 매화나무가지를 결합시킨 파격적인 구도의 이 작품은 여덟 폭 병풍 중 화면 왼쪽 아래에서 나온 매화 가지가 6폭까지 뻗어 있다. 재미있는 점은 매화가지가 끝나는 다음 폭에 ‘삼일포’라는 화제가 적힌 산수화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는 수입박래품 자기와 오브제를 촘촘히 배치한 책거리도에 왜 뜬금없이 삼일포 그림이 등장한 것일까.


조선의 책거리 그림은 정조 치하에서 그 유행이 거세지고 형식적으로 완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삼일포’라는 이름이 예술 작품에 등장한 대표적인 사례는 조선 선조 때의 관리이자 시인인 정철(1536-1594)의 『관동별곡』(1580)에서이다. 그때 정철은 강원도 관찰사라는 고위직 관리 신분으로 관동팔경을 유람하는 행운을 누렸고 그때의 감흥을 가사 형식으로 남겼다. 전통 회화 유산 속에 등장하는 삼일포는 18세기 전반의 정선과 18세기 후반의 김홍도의 그림이 유명하다. 정선과 김홍도가 금강산 일대를 유람한 18세기는 조선에서 유람(여행)이라는 개념이 싹트고 유행이 번지던 시기였다. 다만 그 시대에도 ‘천하제일절경’이라 불리는 금강산 여행은 쉽게 할 수 있는 유람이 아니었다. 김홍도도 왕명으로 금강산 스케치 투어가 가능했고, 정조대에 고위직 관리를 지낸 강세황(1713-1791)도 인생 말년인 1788년 아들 강인이 강원도 회양 부사로 발령받자 이를 디딤돌 삼아 꿈에 그리던 금강산 유람을 했을 정도이다.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금전적인 부담은 물론이고, 신분에 걸맞는 숙소라는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에 관리 등용이나 유배를 빼고는 외지로 장기간에 걸쳐 나간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때문에 김홍도 시대 이후인 19세기에 삼일포나 총석적 등 명승지 그림이 늘어난 것은, 조선 내에 여행 붐이 더욱 퍼졌으며 그런 수요를 받쳐줄 수 있는 인프라가 조금씩 확산됐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19세기에 조선에서 삼일포나 총석정 그림 등 금강산 그림이 조선 상류층에서 유행한 것은 ‘천하제일경 금강산’에 대한 소문과 열망이 조선 사회 전반에 퍼져나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9세기 후반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매화책거리도의 한 폭에 또렷하게 삼일포라고 적혀진 그림이 색채감이 화려한 수입박래품 채색도기와 나란히 진열된 것은 이 책거리도가 그려질 당시 여전히 금강산 유람이 책거리도의 소비층과 겹치던 조선 상류층의 로망으로 통하던 시절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2층 전시실의 그림은 20세기 한국 사회가 ‘민화’라는 호칭에 합의한 그림이 주로 걸려 있다. 재미있는 것은 2층 전시실 들머리에 걸린 두 점의 그림이다.


주최측은 이 두 그림을 20세기 전반에 제작된 <소상팔경도>라고 소개하고 있다. 아마도 병풍에서 떨어져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 두 작품에서 ‘소상팔경’과 연결지을 수 있는 요소는 작품 윗쪽에 써있는 ‘동정루’와 ‘한산사’라는 화제 정도일 것이다. 고려 명종대(1171- 1197)에 한반도에 소개된 '소상팔경'은 이후 한자로 된 글을 읽을 줄 알고, 한문을 써야 하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색채감도 요란한 민화의 품에 안기게 된 것일까.

우리가 아는 ‘역사 유물’ 중 양적으로 가장 큰 부분은 대개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 온기가 돌던 18세기 영조 치세 전후의 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시절에 예술 작품에 잉여력을 쏟아부을 만큼 경제사정이 좋아졌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정선과 김홍도라는 걸출한 화가가 18세기에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영조의 사망 이후 조선의 경제사정은 내리막 길을 걷고 왕조의 지배시스템도 세도정치로 변질됐다. 이런 왕조의 지배력 약화와 무역업과 상업을 통해 몸을 키운 중인 계급의 발흥은 19세기 조선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다. 왕실과 양반계급의 전유물이던 감상용 그림이 민간에 확산되는 것도 이시기이다.

18세기 전반과 중반에 활동했던 정선(1676-1759)은 수묵 산수화에 전념했으나 몰려드는 상류층의 그림 수요를 대지 못했고, 18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김홍도(1745-1806)는 스스로는 아치고절한 문인풍 풍류를 즐기는 인물로 정의하고 싶어했지만 그가 시장 수요에 응한 작품에는 색채감이 넘치는 채색화류도 상당히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19세기~20세기 초의 기록에 김홍도를 ‘도석화로 유명했던 화가’로 정의하기도 했다. 18세기 조선을 대표하는 두 화가의 활동 영역도 이런 시류 변화와 사회 변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인화, 양반계급의 전유물이던 ‘소상팔경’은 어떻게 백성이 즐기는 민화의 세계에 접목된 것일까.

장계수의 논문 민화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와 소상팔경가(瀟湘八景歌)의 영향 관계 중에서 19세기 이후 20세기 초반까지 ‘소상팔경’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상징과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판소리 <심청가>에는 ‘소상팔경가’를 부르는 대목이 있다. 일명 범피중류 더늠으로 심청이 인당수로 가면서 소상팔경을 지나는 풍경장면과 그 곳을 지난 후 아황과 여영 등 여러 혼령을 만나는 장면을 부른 대목이다. ‘소상팔경가’는 ‘범피중류 둥덩 둥덩 떠나간다’ 등으로 시작하는 사설 뒤에 소상강으로 들어가 구체적인 풍경을 노래할 때 불렀다. … 김창룡(1872-1943) 명창은 범피중류가 송광록(19세기 전반에 활동한 鼓手)이 5년간 제주도에서 소리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는 배안에서 읊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광대 송광록은 문인이 향유하던 유명한 시구로 강상풍경을 창작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심청가에 뛰어났던 방만춘(方萬春)이 창작했다고 추정되고 있다. 방만춘이 당시 시문을 잘 아는 봉산읍의 음율가와 함께 고전을 바탕으로 심청가를 윤색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 단가 <소상팔경가>는 19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명창 정춘풍 鄭春風이 불러 대중들에게 사랑 받았다. 정춘풍은 양반출신으로 한학에 조예가 상당했고 가조와 음률에 정통했던 인물이었다. <소상팔경가>의 내용은 정춘풍에 의해 문학적으로 더욱 세련되게 다듬어졌다 .
… <소상팔경가>의 유행과 대중화 현상은 1910년에서 1940년 사이에 출판된 잡가집에 실린 <소상팔경가>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정재호가 정리한 <한국잡가전집韓國雜歌全集 >에는 소상팔경이 대부분 ‘소상야우 동정추월 원포귀범 평사낙안 황릉애원 어촌낙조 강천모설 산시청람’으로 수록되어 있다. 앞서 본 단가와 달리 <잡가집>에서는 ‘연사모종’ 대신에 ‘한사모종’이 아니라 ‘황릉애원’으로 바뀌어 있다.
… 연행에서 <소상팔경가>는 꾸준히 인기 있는 노래였다. 이로 인해 <잡가집>과 같은 노래책에 가사내용이 수록되고 <소상팔경가>를 대표곡으로 한 음반이 취입되기도 하였다. 잡지 <삼천리>(1935)의 조사에 의하면 시골 장터로 돌아다니는 봇짐장사에 의해 옥편 춘향전 심청전 홍길동전 잡가책 순으로 많이 팔리고 잡가책의 경우 연간 일만권이 팔렸다고 한다. 당시에 이들 책은 단순한 독서물이 아니었으며 <심청전>과 <잡가집> 등에 수록된 <소상팔경가>는 외워서 부르는 유행가였다. 이런 향유현상이 과도했음은 근대 잡지 <개벽>(1922년 3월1일)에 “집집 방방에 新小說 俗歌集은 만히 노혀잇다. 이러한지라 男女老少의 입과 입에는 小說 외우는 소리뿐이다. … 방구석에 업드려 雜歌나 불으고 春香傳 深淸傳 新舊小說이나 외이는 것이 그것이 할 일이겟습니까”라는 비판적 글이 실리게 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소상팔경가>는 판소리 사설 단가 잡가 등으로 노래되었고 양반층에서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향유되었다. 노래로 불린 소상팔경가는 기존에 알려져온 소상팔경의 제재와는 차이가 있다. 창자가 청자에게 더 흥미를 유도할 수 있는 내용과 제목으로 바꾼 것으로 생각된다.”

장계수의 논문에서 알 수 있는 것은 19세기와 20세기 초반 한반도에 살던 일반 대중이 즐기던 대중 음악은 해방과 한국전쟁, 분단을 거치면서 20세기 중반 이후 완전히 절연됐다는 점이다. 판소리나 단가가 대중음악으로 위세를 누리면서 그 가사가 노래방 책처럼 공유됐던 시절에 일반 대중이 즐기던 그림 속에 ‘소상팔경’이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현상은 20세기 중반, 식민과 해방, 한국전쟁이라는 거대한 변화와 맞물리며 이후 완전히 한반도 거주자의 일상에서 사라졌고 맥락이 상실된 채 ‘전통 음악’ 혹은 ‘민화’라는 수식을 달고 우리 주위를 떠돌고 있는 셈이다.

대개 문화는 상류층 전용이 일반 대중에게 퍼지는 형식으로 향유된다. 18세기 기준으로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의 수혜자이자 떠오르는 새로운 세력이었던 북유럽의 상류층은  ‘고대 로마 문명’ 관광을 그랜드 투어라는 이름으로 소비했고, 그 현장 방문의 기념품은 18세기 화가 카날레토의 베니스 운하 그림이었다. 덕분에 북유럽 어느 박물관을 가도 카날레토의 그림은 발에 채일만큼 흔하다. 18세기 이후 조선 상류층의 로망 중 하나는 금강산 그림이었고, 민화풍을 포함한 수많은 관동팔경도 병풍이 20세기 초반까지 그려졌다. 그리고 상류층의 전유물이던 중국 고사 유식 자랑은 유행가로 만들어져 일반 대중도 가사를 외어 부를 정도로 내재화됐고 그 로망은 민화를 통해 시각화되었으며 그 유산이 지금 전시장에 걸려있는 셈이다.

이번 전시에 대해 주최측에선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갤러리현대 본관에서 소개하는 《장엄과 창의: 한국 민화의 변주》는 한국 전통 회화 중 조선의 민화와 궁중화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박물관급으로 엄선된 27여 점의 작품을 통해 살핀다. 나아가 사회의 신분과 계층으로 구분되어 내용과 형식 면에서 다르게 분류되어 온 두 회화가 시각 언어로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주되고 확장되어 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민중의 삶과 이야기, 바람과 해학, 상징과 정서를 자기 언어로 포괄하고 과감하게 변주하는 대담한 상상력과 생명력을 보여주는 민화는 생활의 언어로서 조선 당대 민중의 마음을 표현했다. 때문에 친근하면서도 흥미로운 화면을 보여주는 민화를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라 일컫기도 한다.”

이두원 <두원기명절지도> 2025, 수제 울에 먹, 아크릴, 과슈, 피그먼트, 자개, 158.5x155cm


박방영 <본향의 도> 2022, 장지에 혼합재료, 200x417.6cm


현대화랑 옆 갤러리현대에서는 《화이도》전을 통해 전통 요소를 현대회화 장르에 녹여내고 있는 김남경, 김지평, 박방영, 안성민, 이두원, 정재은의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서양화를 전공하고 1990년대에 신영성 등과 난지도 그룹으로 활동했던 박방영은 이후 2011년 동양화 박사과정을 마치는 등 장지에 필과 획으로 그려내는 세계로 들어갔다. 제도권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이두원(b.1982)은 재료의 구애를 받지않고 한국적인 소재를 시각화내고 있다는 점에서 20세기 후반 한국화의 변혁을 이끌었던 일군의 화가를 떠올리게 한다. 김지평은 병풍이라는 오브제를 재해석하는 설치작품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기본적으로 한국화 전공임을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고 있다.


김지평 <범의 머리를 담그면 비가 내린다> 2013, 옻칠, 한지에 먹, 호분, 100x155cm


이번 전시에 갤러리현대에서 포스터로 내세운 작품은 두 작품이다. 《화이도》 전에는 김지평의 <범의 머리를 담그면 내가 내린다>(2013)를 사용했고, 《장엄과 창의》 전에는 19세기에 그려진 <호피도>를 썼다.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그림인 두 그림에도 19세기와 21세기, 근 200년 간의 시절 변화와 관람자의 욕망의 변화가 들어있다.



업데이트 2026.01.2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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