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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찾아온 봄, 매화와 모란 사이를 거닐다 《금상첨화錦上添花_비단 위에 더해진 봄꽃》

전시명 : 금상첨화錦上添花_비단 위에 더해진 봄꽃
장 소 :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기 간 : 2025.3.5-7.31
글/ 김진녕

전시장 들머리의 캐비닛 전시대에는 옛 시절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봄을 알리는 상징이 들어있는 고서와 그림기물이 고요히 자리잡고 있다. 19세기 조선에서 만든 백자청화 두꺼비 연적과 개구리 연적백자청화 매화문 합(18세기), 조영석의 고사도(1686-1761), 최북(1720-?)의 사군자 화첩 중 매화, 19세기의 조선에서 만든 백자 양각매죽문병에 꽂혀있는 섬유공예작가 최은정(b.1982)의 매화 설치 작품.


그리고 그 옆 벽면에는 고려시대 문신 이규보의 글귀가 붙어있다.


봄바람도 저물고 꽃 역시 가버릴 테니 春風且暮又卷歸
부디 꽃을 대하는 데 망설이지 마시길 愼勿對花還草草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동국이상국전집』 제2


서울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열리고 있는 《금상첨화錦上添花_비단 위에 더해진 봄꽃》 전시장을 들어서면 볼 수 있는 풍경이다한반도 중부 지방 기준으로 봄을 알리는 꽃은 매화다물론 영춘화가 먼저 피기는 하지만 봄을 상징하는 대표 주자라면 압도적으로 매화라 할 수 있다아주 오래 전부터 봄의 상징으로겨울을 이기고 봄의 문을 여는 꽃으로 매화는 상찬을 받아왔고시나 그림의 소재로 다루어져왔다.

그래서 캐비닛 전시대를 보면서 매화-을 주된 소재로 시서화도자기가 합을 이루는 흔치 않은 전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졌지만 다음 전시대부터는 예상과는 달리(?) 19세기 화조도와 자수 쪽으로 무게 추가 기울어져 있었다사실 이미 전시 제목에 친절하게 금상첨화錦上添花라는 관용구의 뜻을 비단 위에 더해진 ()이라고 병기해놓고 있었다자수 중 비단 위에 꽃을 수놓은 작업물이 많다 보니 이보다 더 정직한 제목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게다가 캐비닛 전시대 바로 옆에 왜풍의 유입이 진하게 감지되는 금박톤의 <매죽도>(20세기 초두 폭이 걸려있어서 조선조 후기와 20세기 전반의 자수에 대한 암시도 해놓은 셈이다.


전시장에는 조선 후기 화조도와 화려한 화조 자수를 바탕으로 했던 조선조 후기의 혼례복인 활옷조선 후기 수출품으로까지 등장했던 안주 지역의 자수인 안주수 화조도 병풍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의 자수 교육과 화본의 유입으로 20세기 중반까지 영향을 끼쳤던 공작 자수병풍 등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계속 이어져왔던 자수의 맥과 변화 흐름을 살펴 볼 수 있는 작품이 전시됐다.


화려함으로는 수많은 붉고 흰 모란이 화려하게 수놓아진 활옷(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이 단연 눈에 띄었다이 작품은 전통 복식 유물의 수집과 보존에 큰 공을 세운 석주선(1911-1996) 1959년 고궁박물관 소장 왕실 혼례본을 복각해 만든 작품이다원본이 화재로 소실돼서 유일본이 되어버렸다.

전시장에서 좋았던 점은 연관 전시물을 비교하면서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조선시대 대표적인 궁중장식화인 모란도 병풍의 조선 후기 변주인 모란괴석도 4폭 병풍(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호림박물관 소장)이 걸린 가벽의 바로 뒤쪽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 한상수(1935-2016) 장인이 제작한 <자수 모란도 8폭병풍>(1978)이 걸려있다.


<모란괴석도 4폭 병풍> 호림박물관


한상수 <자수 모란도 8폭병풍>(1978) 부분, 한상수자수박물관



19세기 후반-20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자수화조도 10폭 병풍>과 <화조도 8폭 병풍>은 서로 마주보고 있다자수화조도에는 궁중 장식화인 <일월오봉도>나 <십장생도>에 보이던 상서로운 구름 표현이나 학과 벽오동 같은 당시로선 최신 트렌드였을 상징물이 들어가있고화조도 병풍에도 기이할 정도로 길어진 꼬리에 봉황인지 꿩인지 불분명한 새가 화면을 꽉 채우고 있고목련나무 가지에도 태점을 잔뜩 찍는 등 19세기에서야 보이는 새로운 흐름이 화면을 채우고 있다

이 두 작품 바로 뒷쪽 홍인선(1921-2013)의 <자수공작모란도 8폭 병풍>(1970숙명여대박물관 소장)의 작품을 통해서는 궁중장식화의 대중화부터 일본풍의 유입까지, 19세기 후반~20세기 중반 우리 근현대사가 얼마나 숨가쁘게 달려왔는지가 한 눈에 보인다우리에게 봉황이라는 상상의 새가 인기있는 존재이기는 해도  전통 장식화에서 주인공이었던 적은 거의 없었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모습보다는 양식화된 모습으로 묘사됐다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 일본을 통해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면서 공작을 주인공으로 그린 화조도류가 크게 늘었다이 작품도 마루야마 오쿄(圓山應擧, 1733-1795)의 원화에 변화를 주어 공작과 모란을 배치한 작품이다.


홍인선 <자수 공작모란도 8폭병풍>(1970) 숙명여자대학교박물관


이 공작모란도 병풍에는 모란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잔칫상의 고임처럼 모란꽃을 켜켜이 쌓아올리는 방식의 궁중장식화가 아니라 짙은 염색을 한 천 위에 화면 중간까지만 모란꽃을 수놓고 장식적으로 꼬리를 활짝 펴고 있는 공작을 화면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공작도의 변형이다. 20세기 초 새로운 트렌드로 유입됐던 공작도류의 자수 병풍은 결혼식장의 폐백상돌잔치회갑연 등 20세기 중후반 한국인의 일상을 장식했다.

자수 유물이 19-20세기 숨가쁘게 변화하던 시대 속에서 전통과 변화 속에 균형점을 찾아냈던 과거의 미감이라면, 그 유물 사이사이에 놓여있는 도예가 권대섭(b.1952)의 달항아리와 그 달항아리에 꽂혀있는 섬유공예가 최은정의 작품은 지금 현재형으로 생산되고 한국인에게 소비되는 미감을 선보이고 있다.


권대섭 <달항아리>(2018)와 최은정 <모란>(2026)


주최측은 경칩(35)에 맞춰 시작된 이번 전시에 대해 전시는 찰나처럼 스쳐지나가는 봄 날의 풍경을 오래 간직하고자 했던 옛 사람의 염원을 담아비단 위에 수놓은 꽃처럼 정성으로 더해진 봄의 이미지를 소개한다자수는 봄꽃을 가장 정성스럽게 담아내는 방식이었다봄꽃 문양은 일상에서 사용하는 소품 위에 수놓아 늘 지니고 다니거나 자수 병풍과 장막 위에 펼쳐 실내에서도 봄날의 정취를 누리게 했다. … 상춘의 미학은 오늘날에도 이어진다최은정 작가는 섬유의 물성을 살려 꽃잎을 구현하고 전통 자수 기법을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다이번 전시는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지점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상춘의 풍경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천 년 전쯤 살았던 이규보도 봄이 짧음을 아쉬워했다지금도 마찬가지다. 봄은 짧게 지나가고 꽃은 미련없이 지지만 전시장에는 7월 말까지 계속 피어있을 예정이다.

업데이트 2026.03.2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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