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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의 밖에서 만든 세계 -《이승택 : 조각의 바깥에서》전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고, 잡히지 않는 것의 시각화

전시명 : 이승택 : 조각의 바깥에서
장 소 : 소마미술관
기 간 : 2026.04.10 ~ 07.26
글/ 김진녕

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 소마미술관에서 2026년 4월 10일부터 7월 26일까지 《이승택 : 조각의 바깥에서》전이 열리고 있다. 소마 쪽에선 이번 전시에 대해 “본 전시는 올림픽조각공원의 장소적 특수성을 바탕으로, 조각의 형식과 범주를 확장해 온 이승택의 예술 세계를 조명한다. 소마미술관 개관 이후 최초로 개최되는 올림픽조각공원 소장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으로, 70여 년에 걸친 작업 세계를 심도 있게 살펴보는 기획전이다. 조각, 드로잉, 오브제, 사진, 설치 등 2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며, 실내 전시와 야외 조각공원을 아우르는 구성 속에서 이승택의 예술 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고 밝혔다.


이승택(b.1932)의 국내 전시로는 2020년 11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거꾸로, 비미술》전 이후 손꼽을 만한 대규모 전시라고 할 수 있다. 또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와 차별화되는 무기도 갖고 있다. 이승택의 대규모 설치 작업을 현장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1988년 올림픽공원에 설치된 <기와를 입은 대지>와 김중업이 설계한 평화의 문 좌우에 늘어선 각 30개의 기둥에 설치된 ‘열주탈’ 조각, 그리고 소마미술관 앞 잔디가 심어진 구릉에는 밧줄에 푸른 천을 짧은 리본처럼 매단 <바람>(1970/2026)이 설치돼 있다. 《거꾸로, 비미술》전이 열릴 때 국현의 야외 지하 중정에 <기와를 입은 대지>를 설치하기는 했지만 올림픽 공원의 우거진 수풀 사이에 놓여있는 원본의 위엄을 재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선 전시장 안에서 설치 작품과 관련된 아카이브 전시물을 보고 바로 현장에 설치된 작품으로 이동해 관람할 수 있다.


<기와를 입은 대지> 1988



함경남도 고원 태생인 이승택(b.1932)은 홍익대 조각과를 졸업한 뒤 1950년대부터 활동했다. 1960년대부터 조각과 설치 작업에서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작업을 펼쳤지만 2000년대 이후에야 널리 인정받았다. 전통적인 조각의 일인 유명인사의 흉상과 전신상을 제작하며 생활을 꾸리고 그만의 독특한 작업은 따로 개인전을 열어 발표를 하는 등 평생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왔다. 이승택이 생업으로 작업한 결과물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의 김상옥 열사 동상이나 서울 종로구의 성곡미술관 정원에 설치된 성곡 김성곤 흉상 등이 있다. 물론 이런 장르의 컨벤션을 충실하게 이행한 작업물도 이승택 세계의 일부지만 대부분의 국내 전시에선 이런 작업물은 포함되지 않고 있고, 이번 전시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전시장 안에는 이승택이 스스로 만들어낸 비물질의 조각, 즉 바람이나 연기, 불과 같은 손에 잡히지 않는 존재나 현상을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만든 ‘비물질 조각’ 시리즈와, 조각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전통적으로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활용된 적이 없는 일상의 사물을 묶거나 줄로 감거나 또는 오브제에 매어진 흔적을 의도적으로 남겨두는 ‘묶기’ 시리즈 같은 그가 정립한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채워졌다.

주최측에선 이 전시를 여섯 개의 마디로 구분했다.

제1전시실은 195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현재형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승택의 세계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Part 1. 사물 이후의 조각’이란 이름을 달고 있다.

나무 액자나 스케이트, 마른 김, 타고 남은 연탄재, 노끈, 안경 등 일상의 사물을 묶고 해체하고 재배치해 당대 대중에게 ‘이것이 작품이다’라는 새로운 화두(사유의 대상)를 던졌던 이승택 세계의 샘플 모음집쯤 된다. 아름다움이라는 카테고리에서 한참 벗어나서, 있는 사물을 노끈으로 칭칭 감거나 전혀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는 오브제를 붙이는 등 ‘조각’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작업물이 등장한다. 조각이란 단어가 칭하고 있는 전통적인 이미지, 깎고 다듬고 닦아내는 일련의 과정, ‘세련(洗練)’이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하던 전통적인 조각에 대한 인식에 어깃장을 놓으며 시작되는 이승택 세계가 열리는 지점이다.

제2 전시실에 차려진 두 번째 파트의 제목은 ‘전통이 다시 쓰이는 자리’이다.

88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제작된 작업물로 하회탈놀이 등에 쓰이던 탈이나 기와, 옹기 등을 이승택의 ‘당대감각’으로 소화한 결과물이 등장한다. 올핌픽공원에 설치된 일주탈이나 <기와입은 대지>같은 설치작품의 아카이브 자료가 등장해 작품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비조각 연작> 1982-2020, 채색 캔버스에 혼합재료, 개인


세 번째 파트는 ‘조각의 경계실험’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고, 첫 번째 전시장에서 보여줬던 세계의 심화 확장판에 해당된다. 특히 1988년부터 2020년까지 이어지는, 42개의 캔버스로 이뤄진 <비조각 연작>은 이승택 세계를 보여주는 퍼즐이기도 하다. 42개의 조각 중 한 조각에 이승택은 ‘결국 예술은 쓰레기가 되었다. 예술은 그럴싸한 허구이다. 나는 세상을 거꾸로 보았다. 꺼구로 생각했다. 꺼꾸로 살았다’는 서명을 남겨놓고 있다. (‘거꾸로’의 단어 표현이 모두 다르다.)

파트4(제4전시실)의 제목은 ‘장소로 확장된 실천’이다.

사각형으로 구성된 실내 공간 자체를 활용하는 작업이나 스튜디오 바깥으로 나가서, 장소의 맥락성을 작업의 일부로 끌어들였던 퍼포먼스성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현장에서 퍼포먼스를 벌이고 그걸 사진으로 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진에 리터지 또는 합성이라는 방식의 개입을 해서 ‘포토 픽처’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작업물을 만들어낸 것을 볼 수 있다.

별도의 공간이 배정된 마지막 전시실은 5전시실의 ‘자연과 관계맺기’란 이름이 붙어있다.


‘at last, art has been garbage’라는 영어 문장이 쓰인 현수막 위를 수십마리의 쥐가 뛰노는 것을 형상화한 <결국 예술은 쓰레기가 되었다>(1997)라는 작품이 맞이하는 이 전시 공간에는 지름 3미터가 넘는 대형 풍선 작업이나 가로 길이 7미터가 넘는 태피스트리 타입의 작품(물그림)이 선보이고 있다. 주최 측에선 ‘바람, 물, 불, 연기와 같은 자연의 요소는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협력의 조건이다. 작가는 자연의 흐름에 개입하되 결과를 지배하지 않는다. 생성과 소멸의 과정 속에서 조각은 고정된 형태를 넘어 관계로 존재한다. 이 섹션의 작품은 자연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확장되는 조각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파트 6’으로 이름붙인 곳은 작가 이승택에 대한 아카이브성 전시다. 1층 로비의 ‘조각 이전의 드로잉’ 섹션에서는 이승택의 <자화상>(1956) 등 1950-60년대 페인팅과 드로잉을 볼 수 있다. 2층 로비에는 이승택의 올해 인터뷰 영상과 2000년대까지 이어진 다양한 자화상, ‘이승택 시화장’이라고 이름붙인 드로잉북에는 짤막한 글로 된 소회가 붙어있어서 그의 작업물 뒤에 있던 세계관을 살필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이승택의 조각 드로잉 오브제 사진 설치 등 200여 점의 작품을 전시장 안에서 볼 수 있고 전시장 바깥에 설치된 세 개의 설치 작품을 올림픽공원을 걸으며 감상할 수 있다. 수풀이 우거진 봄의 올림픽공원은 그 자체로도 경이로운 설치작품이지만 88올림픽 때 설치한 국내외의 대표적인 조각가의 작품 204점 사이를 거닐다보면 88올림픽이 국내 현대 미술계의 지형도까지 바꿔놓은 경이로운 사건이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업데이트 2026.04.28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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