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시時간間
장 소 :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기 간 : 2026.09.01-12.12.
글/ 김진녕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시時간間》전(2026. 09. 01 - 2026. 12. 12)이 열리고 있다.
주최측은 전시실을 세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 제1전시실에는 ‘순환(循環), 되돌아오는 시간’, 제2전시실에선 ‘관상(觀象), 새겨진 시간’, 제3전시실에선 ‘세월(歲月), 스며든 시간’이란 소제목을 부여했다. 전시장에 나와있는 보물 2점을 포함해 13개 기관, 3명의 개인 소장자가 협조한 총 90여 건의 유물은 한반도 지역에서 살던 이들이 공유했던 시간의 개념과 그들이 시간을 물리적으로 기록하기 위한 노력, 시간이라 보이지 않는 축에 매듭을 묶고 표시한 절기와 그에 맞춘 삶의 방식 등을 책과 그림, 혼천의 등의 고대 과학기기 등 여러 층위에서 복합적으로 시간에 대한 고찰을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 전시실 ‘순환(循環), 되돌아오는 시간’은 천자문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빌려온 <주해 천자문>(1804년)의 첫 페이지의 ‘하늘 천天 따 지地’가 보이는 첫 페이지를 펼쳐놓았고, 그 옆의 벽면에는 <주해 천자문>에서 따온 다음과 같은 글귀를 적어놓았다.
천지의 안을 공간으로 말하면 상하사방인 우宇가 되고,
시간으로 말하면 옛날과 지금인 주宙가 된다.
天地之内 橫說則為上下四方 豎說則爲往古來今
‘우주宇宙’란 말에서 ‘집 우’와 ‘집 주’로 외웠던 것이 실은 아주 많이 뜻을 단순화시킨 것이고, ‘집 주宙’는 시간을 포함하는 말이란 설명이다. 한자교육용 입문서로만 알려졌던 <천자문>이 동아시아의 오래된 우주관이 들어있는 철학책이기도 했던 것이다. 《시時간間》이란 전시를 단박에 설명시키는 매력적인 인트로다.
주최측은 “제1전시실에서는 자연과 우주의 반복되는 변화에서 비롯된 순환적 시간관을 살펴본다. 음양과 오행의 변화,사계의 반복에서 쟈생과 사가 이어지는 불교의 윤회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사유와 이미지 속에 나타난 순환의 모습을 소개”한다고 밝혔다.
<주해 천자문>과 <태극도>, 정선의 <사계산수화첩>, 이인서의 <하락도12폭병풍>(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일월오봉도병풍>(고궁박물관 소장), 18세기 <지장시왕도>(개인 소장) 등은 조선시대 사람이 자연과 우주의 질서를 보던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추최측은 <일월오봉도 병풍> 앞에 현대 도예가인 권대섭과 김시영의 백자 달항아리와 흑유 달항아리를 함께 배치하고 전시장 끄트머리엔 안규철의 설치작품 <머무는 시간>과 <식물의 시간>을 배치해 지금 이 시대의 시간을 덧대어 보여주고 있다. 이런 방식은 세 전시장 모두 끄트머리를 현대 작가의 영상 작품이나 설치작품으로 마침표를 찍는 방식으로 반복된다.
<지장시왕도> 조선 18세기, 개인
‘관상(觀象), 새겨진 시간’이란 부제가 붙은 제2전시실에서는 하늘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기록해 보이지 않는 시간을 구체적인 체계로 만들어온 과정을 조명한다. 시간을 재는 기구나 지도 등 과학기술 유물이 등장하는 공간이다.
해시계, 1849년, 고려대학교박물관
지구전후황도남북항성합도10폭병풍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혼천의>(1871년), 16세기 <백자 구형 앙부일구>(16세기, 개인 소장), 나무판으로 만든 휴대용 <해시계>(1849년, 고려대박물관 소장), <천상열차분야지도>(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등 시간을 관측하고 싶어한 조선시대 사람들의 욕망을 볼 수 있다. 2전시장의 끝은 현대 작가 강이연의 이 설치돼 있다.
‘세월(歲月), 스며든 시간’이란 이름이 붙은 제3전시실에서는 그 보이지 않는 우주의 질서를 규정하는 한 축인 시간에 절기라는 마디를 붙이고 나이와 계절을 헤아리며 삶을 살아낸 한반도에 살았던 이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장 중 가장 떠들썩한 전시물을 보여주는 섹션이다.
<채회십이지도용> 당 7~9세기
주최측은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 뜻을 세웠으며, 마흔에 미혹되지 않았고….”라는 공자의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인생 진도표’를 전시장 들머리 벽면에 적어놓았다. 동아시아 농경사회에서 나이 60이면 인생사 한바퀴를 돌았다는, 아주 오래된 의미를 상징하는 <채회 십이지도용>(중국 당나라 7-9세기)과 <경직도 8폭 병풍>, 제정일치 국가였던 조선의 관리 초상, 그리고 그들의 모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선전관청계회도>(1787), 조선조 상층부 계급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삶의 마디를 그림으로 그린 <평생도>(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 사회의 또다른 축인 평민의 모습을 그린 김득신의 <사계풍속도>(1815년, 개인 소장), 평안감사의 부귀영화를 그리는데 열중했던 이전 시대와는 달리 집단적인 돌팔매질(석전)과 능라도에서 19세기 인기가수 모흥갑의 콘서트를 즐기는 일반적인 평양성 백성의 모습을 두드러지게 그린 <평양성도 10폭 병풍>(19세기 말- 20세기 초, 개인 소장)을 이 섹션에서 볼 수 있다.
<경직도 8폭병풍> 1830년경, 호림박물관
김득신 <사계풍속도> 1815년, 개인, 부분
<평양성도> 19세기 말- 20세기 초, 개인, 전체 및 부분
전시장 마지막에는 방안 가득 둥근 벽시계가 가득찬 방을 통과하게 된다. 벽시계에는 작가가 아는 특정 개인의 이름과 직업, 국적이 적혀있고, 그 시계의 시침과 분침은 저마다 다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선보였던 이완의 <고유시>의 2026년 튜닝 버전이다.
이완 <고유시> 2026, 작가소장
《시時간間》전은 추상적인 ‘시간’이란 개념을 전통적인 가치관과 이런 세계관이 담긴 문화와 유물, 이를 바라보는 현대의 관람자까지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볼만한 전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