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르네상스 거장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의 16세기 제단화 내에, 후원자에게 보수를 더 요구하려고 한가운데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후원자 야콥 헬러의 이름을 따서 헬러 제단화라고 불리는 이 작품에 뒤러의 자화상이 들어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출간을 앞둔 책 『뒤러의 잃어버린 걸작: 글로벌 세상의 여명에서 미술과 사회』에서 캠브리지대학교 근대유럽사 교수인 울린카 루블락Ulinka Rublack은 뒤러와 헬러의 편지를 조사, 뒤러가 복수의 목적에서 자화상을 만들었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헬러 제단화(모사본) 부분. 뒤러는 제단화 중앙에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이 작품의 작가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넣었다.
뒤러는 처음 프랑크푸르트의 교회 제단 중앙 패널을 그리는 대가로 130플로린을 받기로 되어 있었으나, 더 많이 받기 위해 후원자 헬러와 9통 이상의 편지를 주고 받았다.
뒤러는 의뢰받은 다음 해 1508년 11월에 쓴 편지에서 자신은 다른 사람들이 그리지 못하는 것을 그리는 데에 동의한 것이고, 적어도 300플로린의 가치가 있다며, 세 배를 주고 같은 그림을 그리라고 한다면 거절할 것이며 자신은 시간과 돈을 잃고 배은망덕을 얻었다고 썼다.
루블락은 “뒤러는 부양가족이 별로 없어 돈이 그다지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예술가의 자존심을 위해 보수는 그에게 중요했다”고 하며, 베니스에 있는 다른 제단화에 자신의 초상화를 작게 넣긴 했지만 ‘내가 뒤러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뒤러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은 ‘이 작품은 후원자 당신에 대한 것이 아니고 예술이며 500년 이후에도 여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루블락에 따르면 당시 복잡한 구성의 제단화는 화가에게 가장 야심찬 도전으로 오랜 기간 한 작품에 몰두할 수 있고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그림이었으며, 뒤러가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자 제단화를 포기했다고 한다.
헬러 제단화 자체는 1614년 교회에서 철거되었고 1729년 뮌헨에서 발생한 화재로 소실됐다. 17세기 초 모사본으로 현재 프랑크푸르트 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책을 통해 루블락은 1500년 이후는 대형 자화상을 그리지 않았고 1511년에는 제단화를 중단했으므로 헬러 제단화의 자화상은 자신의 예술을 인정받고 기억되기 원했던 한 화가의 시그널이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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