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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인 그림에 가해진 복잡한 시선 - 「尹德熙(1685~1776)의 <책 읽는 여인>에 나타나는 젠더의 특성」

고연희, 「尹德熙(1685~1776)의 <책 읽는 여인>에 나타나는 젠더의 특성」, 『대동문화연구』 No. 118 (2022. 06), pp.73-101.

'내훈內訓'은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가 여성을 가르치기 위해 펴낸(1475) 교양서로 많은 양반 여성들에게 권장됐다. 이러한 교양서를 읽으려면 한자를 알고 한문을 읽을 수 있어야 했다. 조선시대 남자들은 굳이 여자들이 수고롭게 한자를 배워서 그걸 읽지 말고 남성으로부터 그 내용만 배우라고 권했다. 부녀자가 누에치고 길쌈하는 일을 소홀히 하고 시서에 힘쓰면 옳지 않다고 했다. 이 말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개혁을 주장한 성호 이익(1681-1763)이 남긴 말이다. 비슷하게 홍대용 또한 여성이 바느질하고 남는 시간이 있으면 행실규범을 위해 공부를 할 수는 있겠지만 시를 짓고 이름을 얻는다면 정도가 아니라고 했다. 


윤덕희 <독서하는 여인> 18세기, 20×14.3㎝, 서울대박물관


조선시대에 여성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윤덕희가 남긴 그림 <독서하는 여인>과 윤두서가 남긴 것으로 여겨지는 <미인독서> 등의 그림을 보면서 조선시대 책읽는 여성에 대한 시각에 지나친 긍정적 필터를 끼워서 보는지도 모른다. 

이 논문은 <독서하는 여인> 그림 안에는 이중적 태도가 있음을 보여주면서 그 시각이 단순하지만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여성이 책을 읽거나 시를 짓거나 지적인 일을 하는 것을 그다지 좋게 보지 않았던 조선시대에 여성의 지위라는 것은 다 알만한 것이기는 하지만, 17세기나 18세기에는 여성을 칭송하는 행장이나 묘갈명 등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여성에게 '여계'나 '열녀전'을 권하는 것은 여성의 역할을 고착시키기 위한 것이니 교묘한 억압이라 할 수도 있다. 송시열의 연보에는 손부 박씨에게 소학을 읽도록 하고 다른 며느리들이 둘러서서 듣도록 했다는 집안 분위기를 기록했는데, 여성의 지적인 면과 덕을 칭송했다기보다는 송시열을 칭송하기 위해 과장되게 전해진 일화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똘똘한 여인들이 없었던 걸까. 자신이 재능을 가졌어도, 또는 딸이 재주가 있음을 발견했다고 해도 드러내지 않고 겸손하게 살도록 종용(칭송을 통해)했기에, 지적인 여성들의 예는 손에 꼽을 만큼 적다. 

윤덕희의 그림으로 돌아가서. 그의 머리 속에 '경서를 읽는 여인'의 이미지가 들어 있었을까? 어떻게 해서 그런 이미지가 들어갔을까. 그림을 들여다보면 배경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중국의 정원 모습이다. 이렇게 꾸민 데에는 이유가 있었을까. 어떤 원하는 것이나 기피하는 것이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저절로 드러나게 된 어떤 이유 때문인지. 

우리나라와 달리 명대 미인도에는 여성의 독서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명나라 청나라 때 미인도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비정상적 병약미가 나타나는 점이라 할 수 있는데, 박명(미인박명)하는 미녀의 환상은 그 시대 남성 문인들의 심미안이 그닥 건강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당인, 구영 등 유명한 화가의 미인 그림이 통속화, 상업적 제작을 거쳐 퍼지게 되었고, 명대의 미인독서도는 기녀가 나오는 술집 청루가 발달하면서 유명한 기녀를 재현하며 시작됐다고 한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명사와 유명 기녀의 낭만적 사랑 이야기 + 미녀의 불행한 결말. 

戴進(1388~1462)의 〈남병아집도南屛雅集圖〉 : 글 쓰는 藝妓가 남성문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吳偉(약 1459~1508) 〈武陵春圖〉 : 기녀 齊慧眞(武陵春)이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여 五言七言詩를 읊을 줄 알았고 재예가 뛰어났으나 박명하여 우울증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런 그림 속에서 기녀들은 남자 문인의 집 정원이나 서재 같은 곳에 배치된다. 저자는 명의 미인독서도를 '남성의 여성에 대한 쟁취 욕망의 확장'으로 본다.  

만주족 황제의 후궁을 그린 미인독서상에서도 비슷한 예를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아름다운 漢族여인이 당나라 애정시가 적힌 책을 들고 황제를 기다리는 이미지이다. 만주족 황제가 한족 여인을, 중국의 전통 문화를, 결국 정치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청나라 때의 미인독서도는 인물 크기가 실제 사이즈에 육박하도록 커지고 표현이 세밀해졌으며 미인은 꽃을 보거나 수를 놓거나 애정시집을 읽음으로써 사랑을 구하는 외로운 내면을 표현한다. 미인독서상들이 남성의 지배욕과 성적 요구를 시각적으로 반영했다고 해석한다면 다소 극단적일 수 있으나, 명청대의 미인도에서 남성 문인의 욕망을 읽어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와는 반대로, 미인독서도가 독서하는 여성, 사회적으로 지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여성의 사회 진출을 반영한다는 시각 또한 가능하다. 명대에 비록 기녀이긴 하지만 뛰어난 기녀들이 보여준 출중한 능력, 그들이 행사하던 사회적 영향력, 예술적 재능을 겸비한 기녀가 전문 계층으로 발달하던 상황 같은 것들은 긍정적인 변화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그림들이 조선에는 어떤 방식으로 유입되었을까. 기록을 통해 명대의 기녀도가 조선 중기 유입된 것을 확인할 수 있고, 나옹 이정, 이징, 이흥효 등 당대 대표 화가들이 미인도를 그렸다. (그 이전에도 양귀비, 왕소군 등 역사적 인물을 주제로 한 그림은 있었다.) 17세기 조선 문인들의 감상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 구영(仇英)의 <여협도(女俠圖)>, 연행을 갔던 양반들이 접하게 된 미인도 등 중국에서 들어온 미인도의 흔적은 보이지만, 미인독서도를 감상했다는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국립박물관 소장의 인물화첩에는 중국 그림을 모사한 9명의 여성 그림이 있는데, 책상 위에 책을 펼쳐 놓고 앉아 있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윤두서 <미인독서> 비단에 채색, 61x40.7cm, 개인


윤두서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미인독서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국 복식과 중국식 정원을 보면, 중국에서 유입된 미인독서도가 어떻게든 이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고, 글에서 이 그림의 모본이 될 만한 중국 그림들을 제안하고 있다. 


陳洪綬 〈여인독서도(縹香)>, 1651, 지본담채, 21.4×29.8cm, 타이페이고궁박물원


구영 전칭작, <行樂圖> 부분, 견본채색, 129.1×65.4cm 南京박물관 


윤덕희의 <책 읽는 여인> 속 여인은 조금 다르다. 이 여인이 청루의 기녀도 아니고, 중국 복식을 입은 것도 아니다. 당인과 구영 그림 속 화려한 삽병은 (어설프게나마) 스며들었지만, 이 여인은 조선후기의 양반 여인이다. 국적을 대체했고 신분도 변경했다. 

여기서 '사녀'라는 용어를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조선 사람들은 당시 중국미인도 속 여성들을 '사녀'라고 불렀다. 士女는 원래 조선에서 상류층 여인을 뜻했고, 중국 그림들을 '사녀도'라고 칭했다는 것은 중국 그림 속 여성을 여성 문인 정도 이미지로 수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읽고 있는 그 책은 연가(戀歌)나 연애소설을 담은 것이 아니라 좀더 진지한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쓴다. 

“‘오똑하고 단정하게 앉아서’ ‘字字 行行’ 놓치지 않고 독서하고 있는 이 그림 속 여인은 윤씨 집안에 내려오는 독서약계, 남성 어른이 남성 자제들에 요구한 독서행위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듯하다. 〈책 읽는 여인〉이 보여주는 진지한 독서의 자세에는 남성의 독서에 부여된 권위가 교차되어 드러난다. 이 그림을 보았던 조선의 남성은, 이 그림 속 여성이 여성에게 요구된 ‘여계’류의 독서 혹은 고금의 지혜를 알려주는 경사류의 독서를 하고 있으리라 자연스럽게 생각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여인의 독서태도에서 남성들은 스스로 세우고 지키는 ‘독서’ 즉 남성문인을 존재하도록 하는 독서의 권위와 중요성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남성문인들이 신랄하게 비난했던 바의 소설독서류의 시각화는 이와는 자세나 구도가 좀 달라서, 두어 명 여성이 엎드려서 책을 보는 장면 같은 식이다. 여기에는 여성의 구애 욕망을 상상하고 즐기고자 했던 남성 심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신윤복, 《乾坤一會圖帖》 중. 지본수묵담채, 간송미술관


仇英 <漢宮春曉圖> 부분, 견본설채, 전체 30.6×574.1cm,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


윤덕희의 그림에서는 그러한 혐의가 완전히 제거됐다. 그런데 이후에는 이런 그림이 그려진 예가 발견되지 않는다. 19세기가 되면 환경도 달라져서 조선의 기녀 문화가 명대와 비슷해졌고 문인들을 기녀들의 재주를 아끼고 즐겼지만 그 예술활동을 그림으로 남기지는 않았다. 

조선에서 애호된 미인독서도는 아마도 청대에 위조되어 유입된 명대 미인독서도였을 텐데, 자하 신위는 이러한 이러한 그림 속 여인을 몹시 흠모하며 중국 ‘仕女’의 독서도에 대한 글을 여러 편 남긴 적도 있다. 자신의 학식과 취향의 동경이 결국 상상의 나래를 편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경향을 "재덕이 출중한 중국미인 애호 문화"라고 칭했다. 

즉 18세기에 제작된 윤덕희 〈책 읽는 여인〉에서 1) 여성의 독서태도는 사회구조를 고착시켜주는 독서 수행으로 남성들에게 안도감을 주었을 것 2) 이 그림의 배경은 조선 남성문인들이 동경하는 상상 속 중국 ‘사녀’에 대한 애정에 호응하는 장치. 그리하여 여성이 책을 읽는다고 불안해 할 것도 없도록 하고, 아이디얼한 '사녀'를 상상하는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안도감과 우월적 상상의 즐거움을 교차적으로 제공'한 것이라고 말한다. 

조선 남성에게 있어서의 중국 여성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단순한 젠더 구조가 아니고 중국이라는 정치적 문화적 우위성이 개입된다고 보았다. 조선 남성은 '중국 여성이 독서하는 장면'을 즐기며 좀더 고상함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윤덕희는 배경은 중국으로 두되 조선 여성의 독서를 그림으로써 이런 향유의 느낌을 다소 벗어나게 만들었다. 태도는 남성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조정했다. 중국 배경으로 남겨두어 거리감은 유지하면서 조선의 정숙한 부인의 모습으로 이상적 이미지를 넣다 보니 혼돈이 왔다. 미니스커트 입은 여자는 좋지만 내 여자는 안된다는 심리와 비슷한 모순을 겪은 걸까. 








업데이트 2023.08.0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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