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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메이지시대의 계몽주의와 요괴 유령 그림

정상연, 「메이지 시대의 요괴 및 유령 이미지와 신경병과의 관계 고찰」, 『한국근현대미술사학』제46집, 2023.12., pp.393-423.

최근 절찬 상영중인 국산 오컬트 무비에서도 일본의 요괴/유령 이론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질 만큼, 일본은 그쪽 분야에서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며 시각 자료 또한 풍부하다. 이 논문은 근대 국가를 지향하며 발전을 꾀하던 메이지시대 일본에서 시대적 분위기에 의해 요괴와 유령 이미지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어떤 독특한 표현법이 등장했는지를 보여준다. 주요 키워드는 신경병, 즉 정신병이다. 

* 요괴와 유령의 개념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요괴 – 단단한 육체를 가진 인간 형태 이외의 괴물
유령 – 인간상이 기본인 영적 존재. 대개 반투명

메이지시대 초기에는 대중에 만연한 미신을 타파하기 위해 신불(神佛)에 빙의하여 드리는 기도인 요리기토(憑祈祷), 빙의된 여우를 퇴치하는 의식인 기쓰네 오토시(狐落), 덴구(天狗, 빨간 얼굴, 긴 코, 새부리의 모습을 한 요괴), 유령, 기쓰네쓰키(狐憑き, 여우 빙의), 오니(鬼) 등을 금지시켰다. 계몽 잡지에서 ‘이매망량(魑魅魍魎-온갖 도깨비)이 보이는 원인을 뇌와 정신의 감응착란에 의한 것’이라거나, ‘세상에 기괴한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이치’ 등의 글로 유령이나 바케모노, 괴담기설은 어처구니 없는 것이라고 설득했다. 그런데 요때 오히려 요괴 유령이 많이 그려져, 막부 말기와 메이지 시대의 여러 주요 화가들이 요괴와 유령을 그렸고 신문 등에도 괴담 같은 이야기가 증가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미신을 비판하고 그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설명이 필요했고, 이것이 보이는 이유는 환각이나 착시 같은 신경병(적 증상)이라는 의견이 많아진다. ‘신경병’이라는 용어는 18세기에 처음 등장해 문명개화를 상징하는 병으로 인식됐다고 한다. 메이지시대가 되면서 요괴-유령과 신경병이 동시에 언급되는 일이 많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런데 요괴나 유령이 보이는 것은 정신과 마음의 문제라는 이런 주장이 시각화에는 또다른 자극이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논문의 주 연구대상은 만담가 산유테이 엔초(三遊亭圓朝, 1839~1900)의 유령그림 컬렉션이다. 

산유테이 엔초라는 인물은 괴담 이야기로 인기 있던 만담가로, 유령 그림 수집가로 알려져 있다. 엔초 컬렉션은 불타서 사라진 것 외에 현재 50점이 전해지는데(젠쇼안全生庵 소장), 기쿠치 요사이(1788~1878),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廣重, 1797~1858), 시바타 제신(柴田是眞, 1807~1891), 다카하시 유이치(高橋由一, 1828~1894), 가와나베 교사이(河鍋暁齋, 1831~1889), 쓰키오카 요시토시(月岡芳年, 1839~1892), 와타나베 세이테이(渡邊省亭, 1852~1918) 등 당시 저명했던 화가들의 이름이 보인다.

괴담회 사용 목적으로 수집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아름다운 여성 모습의 반투명 유령이나 공포, 추악함을 강조한 그림들이 있다. 이중 기쿠치 요사이, 고손(생몰년 미상), 스즈키 세이이치(메이지 시대 활동), 우타가와 요시노부(1838~1890)의 작품에서 에도 시대 도감 등 기존에 두드러지지 않았던 표현을 몇 가지 들어 신경병으로 요괴와 유령을 설명하려 했던 시대의 분위기를 읽어낸다. 

키쿠치 요사이의 버드나무


기쿠치 요사이, <비바람 속 버드나무>, 1906, 비단에 채색, 82.7×28.7cm, 도쿄 젠쇼안


『미술화보』에 실린 요사이의 유령화(출처: 『美術畵報』10編第11, 畫報社, 1902)


버드나무는 유령이 잘 출몰하는 장소인데, 버드나무의 위나 아래쪽에 등장한 모습으로 그리는 일이 많았으나, 엔초 컬렉션에서는 물기 많은 붓을 이용해 버드나무가 비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유령처럼 보이도록 교묘하게 그린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스즈키 세이이치의 유키온나
겨울 눈의 정령인 유키온나는 눈 내린 날 죽은 여성이라 소복 차림으로 다리만 흐릿하게 그린 경우가 많았지만, 엔초 컬렉션의 스즈키 세이이치는 남천 나무에 쌓인 눈 뒤로 흐릿한 잔상을 만들고 내리는 눈송이 위치를 교묘하게 해서 눈과 입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스즈키 세이이치, <유키온나>, 19세기~메이지 시대, 비단에 채색, 113.3 ×32.8cm, 도쿄 젠쇼안


우타가와 요시노부의 우미보즈
우타가와 구니요시(歌川國芳, 1798~1861)의 제자인 우타가와 요시노부가 그린 바다요괴 우미보즈를 보면 다른 도상과 달리 반투명하게 그려 머리와 달이 겹쳐지게 몽롱한 표현을 했다. 직접적으로 형상을 그리지 않고 나뭇가지, 눈, 달과 같은 자연물에 그것을 기탁해 유령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우타가와 요시노부, <우미보즈>, 19세기~메이지 시대, 종이에 채색, 131 ×61.5cm, 도쿄 젠쇼안



우타가와 구니요시, <도카이도 53역참 쓰이 구와나>, 1844~1847, 다색목판화, 약 36.5×24.4cm,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요시토시의 신케이산주로쿠카이센
산유테이 엔초, 유령, 신경병 키워드를 모두 충족하는 예로, 역시 구니요시의 제자인 요시토시를 주목해서 보고 있다. 그는 다양한 주제를 그렸지만 잔혹하고 피가 낭자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엔초와 교류가 많았고 켈렉션 중에서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요시토시는 용모도 좀 기이했던 듯하고 유령을 보는 사람으로 전해지기도 했으며 우울증을 비롯, 여러 차례 정신질환을 앓았다(54세에 세상을 떠났다).
 
사망 직전의 마지막 작품이 <신케이산주로쿠카이센新形三十六怪選>. 제목의 신케이[新形]는 유행했던 용어 신경병의 신케이[神經]와 엔초의 신케이카사네후치(真景累ヶ淵)의 신케이[真景, 眞景]을 패러디한 것이라고 한다. 그의 다른 작품과 다르게 좀이 파먹은 것처럼 윤곽선을 그렸고, 화면 안에 요괴와 유령을 그리지 않고 분위기나 인물의 동작으로 존재를 암시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다른 사물에 빗대어 그린 경향도 분명하다. 


쓰키오카 요시토시, 『신케이산주로쿠카이센』중 <후쿠하라에서 수 백개의 해골을 보는 기요모리>, 1890, 다색목판화, 약 37.0×25.1cm,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쓰키오카 요시토시, 『신케이산주로쿠카이센』중 <세이겐의 영 사쿠라히메를 사모하는 그림>, 1890, 다색목판화, 약37.0×25.1cm,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해골 유령 형상을 교묘하게 표현한 것이 환시와 착각으로 요괴와 유령이 보인다는 당시의 해석이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메이지 말기가 되면 공포와 불안감을 상기시키는 요괴와 유령 이미지는 점차 줄어들고 명맥만 유지하며, 여성의 아름다움과 결합한 유령화가 두드러진다. 

유령 그림은 아카데미 미술계에서 환영받는 화제는 아니었지만 우고카이(烏合會)의 화제가 ‘괴이’였던 적도 있고, 삽화 영역에서 종종 그려졌다. 1880년대 문예잡지의 유행에도 반영된다. 그러나 이 시기(메이지-다이쇼)의 유령 이미지는 아름다운 여성이 갖는 상실감과 덧없음과 관계된 것으로 보았다. 
업데이트 2024.03.13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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