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희, 「이재관의 고사인물도 연구-19세기 협기 이미지의 성립과 관련하여」, 『미술사와 시각문화』 Vol.32, 2023, pp.162-203.
국립중앙박물관은 조선 후기 여항문인이자 화가 이재관(李在寬, 1783-1838경)의 고사인물도 6폭 두루마리 족자 세트를 소장하고 있다. 6폭 중 두 폭은 남성, 네 폭은 여성을 그렸으며 각 폭의 길이가 140cm로 꽤 크고 가까이 보면 섬세한 묘사가 돋보여 성심성의껏 제작한 역작임을 알 수 있다.
이재관,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 6폭, 19세기 초, 종이에 담채, 각 139.4×66.7cm 내외, 국립중앙박물관
결론부터 말하자면 논문에서는 이재관의 고사인물도가 19세기의 기생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여성들은 일반 여인들과 달리 재주가 있는 여성(재녀) 혹은 의협심 있는 몸 쓰는 여성(여협)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재녀와 여협은 19세기 경화세족의 이상적 연인상으로 새로이 대두되기 시작한 여성 이미지다. 당시의 기생들이 이러한 재녀와 여협의 역할을 하는 '협기'로 자신을 형상화함으로써 남성 문인의 이상적인 동반자로 여겨지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기생도 문예적 능력 면에서 양반들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자긍심 같은 것이 생겨났을 수 있고 그를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 이런 식으로 발현되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이재관이 이런 협기의 모습을 그린 사실과, 그가 당대의 명기인 운초(김운초)와 친분이 있었다는 것을 연결하고 있다.
두 남성 고사인물화와 네 여성 인물화가 다른 세트일 가능성도 제기된 적이 있으나 거의 같은 크기, 일괄 입수 등의 상황을 보면 그럴 여지가 적다고 보여진다.
선행연구에서 고연희는 네 여성 인물이 〈미인사서도〉, 〈미인취생도〉, 〈여선도〉, 〈여협도〉 순서대로 설도, 농옥, 홍불, 홍선임을 밝혔다. 설도와 농옥은 재녀, 홍불과 홍선은 여협에 해당한다.
설도 : 당나라 유명 기녀이자 시인. 백거이와 교유.
농옥 : 춘추시대 악기 연주가 출중했던 여인
홍불 : 수나라 양소의 총애를 받던 기녀. 젊은 장수와 달아나 전장을 누볐다고 함.
홍선 : 당나라 창작소설 『홍선전』 주인공. 신기한 능력으로 주인을 구함.
여성들과 달리 〈송하처사도〉와 〈파초하선인도〉에 등장하는 남성은 특정한 고사의 등장인물이 아니라 일반적인 은자(隱者)이다. 연구자는 이들이 포함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재녀와 여협의 이야기에서 이 여성들과 짝을 이루는 남성들의 존재가 있으니, 이 고사인물도에도 짝을 이루도록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화제도 그렇고 구성도 그렇고 짝을 이루는 그림이 있었을 것이며, 이 세트 중에서는 <미인사서도>와 <파초하선인도>가, <송하처사도>는 <미인취생도>와 짝을 이루었을 때 어울린다고 보았다. 즉 연인 관계로 설정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논문은 이어서 19세기에 연인 관계의 남녀를 그림으로 제작하는 예가 드물지 않았을 것임을 보여준다.
이재관의 고사인물도 중 <미인사서도>와 <파초하선인도>
이재관의 고사인물도 중 <송하처사도>와 <미인취생도>
열녀나 현부가 아니라 재녀와 여협이 문인의 이상적 모습인 은거자와 짝을 이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청의 문인들과 교유하고자 했던 경화세족들 사이에서는 재녀와 여협들이 낭만적 연애 대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아졌고, 학문과 예술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선호하는 분위기도 생겨난다. 심노숭의 『계섬전』(1797), 이옥의 「북관기야곡론」 등에서 그 증거를 찾았다.
18세기 초 조선에서 기생은 의리가 없는 존재로 간주되다가, 19세기에 협기의 태도로 절의를 지키는 모습을 보인 것 등으로 이미지가 변화한 것이다. 이러한 ‘협기’의 이미지가 이 고사인물도에 드러난 것이고, 이 넷은 자신의 연인을 주체적으로 선택한 이들이며, 이러한 주체성이 19세기 조선에서 여협의 중요한 이미지 특성으로 논의된다.
이재관이 교유했다는 기생 김운초(金雲楚, 1800경-1857이전)는 평안남도 성천의 명기로 시가 뛰어나서 한양에까지 이름을 날렸고 조정 핵심 인사 안동 김씨 김이양(1755-1845)의 소실이 되기도 했다. 운초가 자신을 협기로 형상화하려 했다는 것은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동료인 기생들에게 보낸 시에서도 ‘지기를 만나지 못하는 것을 기녀의 가장 큰 슬픔’으로 꼽기도 했다. 김운초는 이재관의 화실 흔연관 시회에 참여하고 자신의 시집에 그를 남겼다. 그랬으니 이재관과 그림에 제를 남긴 조희룡, 강진 등도 운초 등의 기생들과 친분을 나누고 있었을 가능성은 크다. 이재관은 기녀가 사적인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는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조희룡과 강진이 기생들과 교유를 했다는 기록은 더 많다.
연구자는 이 고사인물도에 운초와 그의 애인 김이양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이 많다고 하면서 그 예로 자신을 설도에 비유했던 일들, 원래의 고사와 달리 제화시에 여성의 연인이 나이든 관료임을 상정한 것 등을 들었다. 운초가 고사인물도 제작에 참여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재관, 〈오창회인(梧窓懷人)〉, 《소당화첩》 종이에 담채, 23.0×27.0cm
필자는 기생이 회화의 감상자이자 수요자(需要者)로 활동했을 가능성의 예로 이재관의 고사인물도를 특정했다. 신분이 낮았던 기생들이 주체로서의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 <고사인물도> 들은 기존의 협녀 등의 이미지를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자 하는 의도와 변화된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