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엽, 「게일(Gail) 허(Huh) 여사의 기증과 그 주변:국외문화재 환수의 의미와 과정에 대한 일고찰」, 『미술사연구』Vol.no.47, 2024.12, pp.161-179.
2024년 12월 미술사연구회 학회집 미술사연구에는 춘계학술대회에 있었던 게일 허 여사 기증과 미술품 환수 과정에 대한 특별 강연 강연록이 포함되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하 재단)이었던 2022년 5월, 미국 워싱턴 DC의 재단 미국사무소의 책임자였던 김상엽 소장은 “옆집 사는 미국인 할머니가 ‘소치 그림’을 감정받고 싶어하신다”는 내용의 제보를 받는다. 재단 미국사무소 측은 6월 6일 소개해 준 미주개발은행에 파견중인 기획재정부 국장 일행과 함께 게일 허 여사를 찾아가서 진도 출신의 은행가 시아버지 허민수(1897-1972)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소치 허련의 산수도팔폭병풍과 소나무 그림을 보고 수준급의 그림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복도를 스치며 지나가다가 『석농화원』의 일부처럼 보이는 그림을 발견하고는 이 모두에 대해 전문가들의 판단을 위해 보고를 하게 된다. 전문가들의 답변을 통해 복도에서 본 그림은 화풍상 조선 중기 <묵매도>이고 석농화원의 김진규 그림임을 확인받는다.
허련 《산수도팔폭병풍》 19세기, 종이에 담채, 그림 각 100×26㎝, 국립광주박물관(게일 허 구장, 2022.6.6 촬영)
허련 〈소나무〉 대련, 19세기, 종이에 담채, 93×27㎝, 국립광주박물관(게일 허 구장, 2022.6.6)
김진규 <묵매> 18세기, 종이에 먹, 32×22.5㎝, 국립광주박물관(게일 허 구장, 2022.6.6)
6월 17일 미국사무소 일행이 게일 허 여사를 두 번째 방문했을 때 트렁크에 든 족자들을 보여주었는데, 양기훈, 김응원, 이도영 등과 함께 신명연의 <동파입극도>까지 발견하고 김 소장은 흥분을 억누를 수 없었다. 작품 자체도 훌륭했고 19세기 한중회화교류사를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자료로서의 가치도 컸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숙고 끝에 게일 허 여사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의견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로 하여 재단 본부로부터 허락을 받았다. 즉, 옥션에 출품된다면 높은 가격에 거래될 수도 있는 훌륭한 작품들이기 때문에 만약 시장에 출품을 원한다면 재단이 제일 먼저 교섭할 수 있도록 요청드리고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게일 여사가 트렁크 안에서 꺼내 보여준 그림들(2023. 6. 17)
신명연 〈동파입극도〉, 19세기, 종이에 담채, 전체 112×28.5㎝, 화면 25×15㎝, 국립광주박물관(게일 허 구장, 2022.6.17)
6월 29일 세 번째 방문에서 김 소장 일행은 게일 여사 소장품의 중요성과 가치를 알린 후 재단 본부와의 결정 사항을 전달했다. 그러자 게일 여사로부터 ‘허민수 이름으로 기증하겠다’는 답을 듣는다. 소중한 미술품을 국내로 환수할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 기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소박한 생활을 하고 있는 여사의 큰 결정에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무상기증 의사를 밝혔으니 그 다음으로는 어느 곳에 기증할 것인지를 정해야 하는데, 게일 여사는 먼저 시아버지의 고향 ‘진도’를 제안했고, 재단 측은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고 안전한 보관이 이루어질 수 있는 국립광주박물관을 추천하게 된다. 여사의 동의 하에 일은 신속히 진행되어 2022년 7월에 대부분의 절차가 완료됐다.
2022년 11월 3~4일 국립광주박물관 조사팀이 미국으로 와서, 미국사무소 측은 게일 여사에게 안내하고 <동파입극도> 발문 국역 등 관련 자료를 제공, 실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2023년 2월 16일 허련의 《산수도팔폭병풍》, <소나무> 대련, 김진규의 〈묵매〉, 신명연의 〈동파입극도>가 국내로 반입됐다. 허민수 선생이 아들 허경모·게일 여사 부부에게 선물로 준 후 50여 년 만에 고국으로 귀환한 것이다. 이 작품들은 2023년 9월 15일부터 12월 10일까지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애중(愛重), 아끼고 사랑한 그림 이야기 고(故) 허민수 기증 특별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가 개최되어 많은 관람객들이 관람할 수 있었다.
국립광주박물관 ‘애중(愛重) 전 현수막’(2023.9. 15.)
강연은 이 같은 아름다운 과정에 동참할 수 있었던 기쁨으로 결론을 맺는데, 다만 박물관의 전시가 기증특별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발견과 기증 과정에 대한 소개 기회가 없었던 점, 전시가 있기까지 재단 의 참여가 배제되었던 점을 지적했다. 박물관 측의 사정도 있을 수 있겠으나 국외문화재 환수 과정에서 보기 드문 우수한 사례로 널리 알려질 필요가 있던 건임에는 틀림이 없고, 과정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이후의 문화유산의 발견과 활용에 도움이 될 것임도 당연하다. 전시 도록에 포함된 박물관 담당자의 출장 칼럼이 기증 과정을 공개한 유일한 공식 자료인 셈인데 여기에도 <동파입극도> 발견이 실사 담당자의 출장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서술되어 적절치 않음을 지적했다. 사전에 재단·문화재청·국립광주박물관 간의 정보 공유 과정이 있었다면 이를 정확하게 기록해 남겨야 마땅하다. 원활한 협력으로 좋은 사례를 내었던 것에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좌) 게일 허 여사와 재단 미국사무소 정한나 직원(2022.7)
(우) 주미대한제국공사관(재단 미국사무소)에 방문한 게일 허 여사와 김상엽 당시 미국사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