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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저택에 있던 중국풍 벽지, 책가도와 원류를 공유할까

이정은, 「조선시대 책가도의 원류에 대한 고찰-유럽에 현존하는 중국 책장 그림을 중심으로」, 『동양미술사학』 Vol. 20, 2025.2., pp.105-132.

조선 후~말기에 상당히 유행했던 책가도의 기원에 대해, 그간 중국과의 교류에서 전해졌고 여러 가지 중국 그림이 언급됐다. 청대 궁정에서 활동한 예수회 선교사 낭세녕(郞世寧, Giuseppe Castiglione, 1688~1766)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다보격경도에 기물이 진열된 모습 같은 것들이 그 예인데, 그 관계가 어느 정도 직접적인지에 대해서 모호한 부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중국 미술사학계에서 청나라 때 유럽과 일본으로 수출이 된 그림들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특히 서양화법을 사용한 청대 그림의 해외 수출에 대한 지식이 쏟아져 나왔다. 궁정에서 그려진 것 외에도 동시대 소주(蘇州) 등 지방에도 서양화 기법을 도입한 작가들이 있었고 수많은 수출용 그림을 그렸던 것도 밝혀졌다. 기존의 청대 궁정과는 다른 양식의 그림들이 속속 소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논문에서는 청나라에서 유럽으로 수출된 ‘중국 벽지’들을 살펴보고 연대가 알려진 조선 화원이 그린 책가도와 구체적인 면을 비교해 연관성을 밝혀내고자 했다. 

유럽에서 유행했던 시누아즈리로 청나라의 여러 미술품들이 유럽을 향했다. 유럽 상류층 저택에 중국에서 수입된 도자기나 그림 등이 실내 장식을 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중국 그림이 벽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중국 그림 벽지가 깊이 있게 논의된 것은 최근으로, 2018년 에밀 드 브루인이라는 학자가 영국과 아일랜드의 저택에 18~19세기에 전해진 중국 벽지에 대해 최초로 연구해 발표했다. 18세기 유럽 각지 상류층의 저택에는 중국 그림을 벽지로 장식하는 것이 유행했고, 지금까지 영국,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독일, 네덜란드, 체코 등에 중국 벽지로 장식된 건축물이 다수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여러 지역에 장식된 중국 벽지에 동일한 도상이 출현하는 것으로 당시 일정 유통 경로를 통해 중국에서 유럽으로 판매, 전파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논문은 구체적인 도상에 대해 자세히 짚고 있지만, 이 유럽 저택의 중국 벽지를 보면 책가도와의 관련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영국 개인 저택, 중국 침실(Chinese Room)


영국 개인 저택, 중국 침실 벽지 부분, 18세기 중반, 종이에 채색



체코 벨트루시성의 그랜드 중국 살롱(Grand Chinese Salon)


체코 벨트루시성의 그랜드 중국 살롱 벽지 부분, 18세기, 종이에 채색, 



노르딕 박물관(Nordiska Museet) 소장 <중국 책장 그림> 부분, 18세기, 종이에 채색



생물학자 린네의 농장에 있던 <중국 책장 그림> 부분, 18세기, 종이에 채색, 웁살라 대학 박물관(Uppsala University Museum)


이형록이나 장한종의 책가도와 이 그림들을 비교하며 유사성을 찾았다. 양식적으로는 공간처리, 투시도법, 명암법, 눈속임기법(실재같은 묘사) 등을 들었고, 소재의 면에서도 쌓인 책, 책 상자, 펼쳐진 책, 문방구가 꽂힌 필통, 도장들, 그림 두루마리, 재가 수북한 향로, 자사호, 빙렬문 자기, 수선화, 뚜껑이 있는 찻잔, 접시에 놓인 불수감, 화병에 꽂힌 꽃 등 기물과 놓는 방법 등에서 공통적인 부분을 여실히 드러낸다. 

현재 영국, 체코, 스웨덴 등에 있는 중국 책장 그림은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는데, 건축물의 연대와도 일치한다. 그 시기는 조선 후기 책가도가 유행하기 시작한 18세기 후반과 시간적으로 가깝다. 이러한 점들을 볼 때 이들 그림은 적어도 책가도와 공통의 원류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연구자는 맺음말에서 책가도가 연폭병풍이라는 화면 형식의 특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빼곡히 물건이 들어찬 진열장을 마주하는 듯한 신선한 느낌을 주면서 장식성을 극대화했다는 점을 들어 책가도의 독특한 점을 강조했다. 

책가도의 원류에 대한 연구는 왜 중요한가. 폭발적으로 문화 교류가 확대되면서, 회화적 기법에서부터 유행의 흐름까지 영향을 주고 받았던 변화무쌍한 시대를 세세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된다. 생각보다 밝혀져 있는 바가 적다. 

업데이트 2025.05.2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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