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진, 「조선미술전람회 일본인 심사원의 조선 여행」, 『미술사학』, vol.49, 2025, pp. 93-121.
조선총독부가 주관하는 연례 미술공모전인 조선미술전람회, 약칭 선전은 당대 일본 화단의 꽤 비중있는 중진들을 심사원으로 위촉, 조선인과 조선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화가의 출품작을 심사해 조선에서의 미술 작품 경향을 이끌어 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심사를 위해서 조선을 방문하면서 겸사겸사 알려진 곳을 여행하고 스케치나 감상을 남겨 신문에 실리기도 하고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마에다 세이손(前⽥青邨, 1885-1977), 나카자와 히로미쓰(中澤弘光, 1874-1964), 이시이 하쿠테이(石井柏亭, 1882-1958)와 같은 심사원들은 선전 이전에도 조선을 여행해 기행문과 작품을 많이 남긴 화가들이다. 이 논문은 선전 심사원 중 이 세 사람과 다나베 이타루(⽥邊⾄, 1886-1968), 야자와 겐게츠(⽮澤弦⽉, 1886-1952), 이케가미 슈호(池上秀畝, 1874-1944) 등 일본인 화가 선전 심사원이 남긴 여행기록을 모아 그 시각을 분석하고, 이들이 가지게 된 ‘조선에 대한 시각’이 선전 심사에 적용된 바가 있을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제14회(1935), 제15회(1936) 조선미전 동양화부 심사원을 맡았던 마에다 세이손은 1915년 5월에 처음으로 조선을 방문, 잡지에 여행기를 기고했는데, 부산부터 평양까지 다니면서 수원은 일본다운 풍경이 아름다워 화재(畵材)로 삼을 만한 것이 많다, 궁과 기생집을 찾았던 경성은 대체로 불쾌하다, 평양은 도회적이다 등의 느낌을 전했다. 마지막으로는 '풍속 및 예술품'이라는 제목으로 건축물, 모자, 가마 등 일본과는 다른 특징을 관찰한 바를 적었다. 마에다 세이손은 이 여행의 체험을 기다란 두루마리 그림 <조선지권(朝鮮之卷)>으로 남겼다. 북적대는 시장과 뱃놀이 장면 안에 흔한 조선인들의 모습을 가득 담았다.
마에다 세이손 <조선지권> 부분, 1915년, 종이에 담채, 33×909cm, 도쿄국립박물관
제11회(1932)와 제18회(1939) 서양화부 심사원이었던 나카자와 히로미쓰는 1917년에 조선을 여행하고 기행문집의 한 꼭지로 48쪽의 글과 24개의 삽화를 남겼다. 그의 경우에 황태자 즉위 기념 동궁 장식화 중 조선 풍경 담당으로 선정되어 그릴 거리를 찾기 위해서 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나카자와는 이후 50여 일 동안 수원에 체류하면서 화홍문 그림을 완성했다. 기행문에서는 가옥은 '버섯' 민둥산은 '둥근 흙만두'로 묘사하는 등 부정적인 부분이 많았던 것 같고, 반면 수원에서는 성벽 누문과 화홍문에 대한 깊은 인상을 묘사했다.
「헌상화의 배경이 된 화홍문과 나카자와 히로미쓰」, 『경성일보』, 1917년 8월 20일
이시이 하쿠테이는 그림의 소재를 찾기 위해 여러 차례조선을 여행하고 여행기록도 많이 남겼는데, 선전 이전, 화재를 찾기 위해 여행했을 때 금강산, 경성, 경주, 평양, 연천 등에 대한 기행문을 수록한 단행본이 있다. 금강산에서 스케치한 일화, 경성, 경주 유적지등에 대해 적었다. 연광정에서 바라보는 평양 전경을 50호 화폭에 담기도 했다.
이시이 하쿠테이는 1930년 조선미전 심사차 조선을 방문했을 때도 기행문을 남겼는데, 10년 전과 달리 더 도시화된 경성, 동쪽으로 이전된 광화문 등을 보고 조선의 전통 건축물이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에 대해 다행이라는 심경을 드러냈다. 일상적인 조선인 마을을 그리거나 지방관의 안내로 목포, 부여 등 여러 곳을 둘러보고 그림을 그렸다.
이시이 하쿠테이 <목포부감木浦俯瞰>으로 만든 엽서
제7회(1928), 제8회(1929), 제16회(1937) 조선미전에서 심사원을 맡았던 다나베 이타루는 1928년 부산, 경성, 인천, 평양을 여행하며 일기 형식의 기행문을 잡지에 기고했다. 부산에 도착해서 느꼈던 조선에 대한 첫인상은 “의외로 민둥산이 아닌 녹색”이라는 것이었고, 이를 데라우치 총독 시절 나무를 심어 그렇다고도 했다. 인천의 산 위 별장 풍광, 강서 고분벽화의 아름다움, 화재가 풍부한 도시로 개성을 언급했다. 1931년의 또다른 여행기에서는 조선에 대한 인상이 더 자세히 언급되어 있는데, ‘흰옷’, ‘옛날식’, ‘잠들어 있는 느낌’ 등 조선을 언급하는 감상을 되풀이하고 있다. 대동강, 개성의 여인들 인상, 경성의 동서양의 양식이 혼재된 건축물 등을 적었다.
논문에서는 화가들의 여행 기록에서 알 수 있는 것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1. 당시 조선의 모습을 과거 일본의 모습과 빗대거나, 조선이 정체된 과거의 모습임을 강조
2. 산의 ‘적색’, 옷의 ‘흰색’, 아이들 옷의 ‘단순한 원색’, 맑은 공기의 ‘파란색’을 조선의 색으로 인식
+ 조선총독부의 식재 사업으로 조선의 ‘적토’ 녹화(綠化). 시혜론적 시각과 변형에 대한 아쉬움
3. 전형적인 조선 풍속들, 즉 강에서 빨래하는 여인, 전근대적이고 게으른 남성, 지게꾼, 흰옷과 갓을 쓴 사람, 기생, 시장 풍경을 흥미로워하고 이미지로 끊임없이 재생산
연구자는 이들의 조선 여행은 결국 조선에 대한 인상을 형성, 강화하는 역할을 했고, 사전에 습득한 정보로 형성한 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재확인’ 과정이었으며, 기행문과 그림을 통해 조선에 대한 언어적, 시각적 정보를 ‘재생산’하는 중요 과정을 담당했다고 보았다. 조선미전 심사평에서 출품 화가들에게 요구했던 ‘지방색·조선색·향토색·로컬컬러’의 실체가 이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