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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의 문명대 서세옥 논쟁, 한국화 비평의 한계

강지은, 「‘문명대·서세옥 논쟁(1974)’을 통해 본 1970년대 한국화 비평에 대한 고찰」, 『미술사학보』 vol., no.64, 2025년 6월, pp.57-72.

지금으로부터 51년 전인 1974년 6월, 『공간SPACE』 지에는 당시 신진 미술사학자였던 문명대의 글 「한국회화의 진로문제」가 게재됐다. 한국회화가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탐색하는 글이지만 서세옥의 작품과 작품세계를 분석하며 강하게 비판하면서 미술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비판의 내용은 상당히 공격적이었는데 첫째 ‘전통의 계승’ 차원에서 서세옥이 문인화가가 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것, 둘째 그의 역사의식이 전위라고 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가 핵심이다. 즉 전통을 계승했다고 하거나 전위적이라거나 추켜세우는 당시의 평가를 모두 부정하는 것이다. 


서세옥, <석과(碩果)>, 1970년대, 종이에 수묵담채, 70.5×93.5cm
서세옥, <설화(說話)>, 1974 (출처: 『공간SPACE』 86호, 1974.6. p. 6.)


문명대는 다음과 같은 점을 들어 서세옥이 전통 계승과 전위 둘 다 아니라고 주장했다. 

1. 독창적인 혁신이 아니라 일본에서 정립된 스타일을 차용한 것이다. 
 일본의 수묵 기법(특히 ‘타레코미(たれこみ)’)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현대 일본화에서 많이 보이는 원근법을 무시하고 배경을 단일색으로 통일하는 구도가 서세옥에게도 보인다.
2. 문인화의 기본이 안 되어 있다. 
 실제로 “사의(寫意)”를 일본식 기법으로 대체하면서 “전통적 문인화의 정신성을 표현한 것처럼 위장”하고 있다.
 문인화는 투철한 철학적 사상이 있어야 그림이 완성되는데, 서세옥은 단지 “꿈의 세계” 를 추구한다는 막연한 이상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전통적 문인 화가들은 철학적 사상과 깊은 수양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서세옥에게는 이러한 철학적 깊이가 부족하다.


  이에 대해 서세옥 본인이 등판해 신문 인터뷰에서 “객관성을 잃고 인신공격의 글”이라 비난했을 뿐 아니라 그가 이끌고 있던 서울대학교 동문 29명은 항의문을 발표하고 『공간』 지에 사과를 요구했다. 『공간』 지는 바로 다음달에 이종상과 허영환의 긴 반박문을 싣느라고 발행일이 늦어지기까지 했다. 이후 문명대 측의 재반론은 이뤄지지 않았다. 

  작가와 비평가 사이에 언제든 있을 수 있는 해프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1974년 당시 이 논쟁을 다룬 신문 기사는 6개나 되어서 미술계 밖에서도 눈길을 끌었고, 『경향신문』과 『조선일보』는 1974년 미술계에서 일어난 최대 이슈 중 하나로 꼽았으며 한참 후 1970년대 미술계를 되돌아보는 1979년의 글에서도 1970년대 미술계의 주요 사건으로 이를 언급할 만큼 큰 사건이었다. 그렇게 큰 이슈가 되었던 이유는 서세옥의 작품이 독창적인 한국화의 길을 개척했다는 평가가 잘못된 것임을 논증하기 위해 독창적인 한국화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문명대·서세옥 논쟁을 중심으로 1970년대 한국 미술계의 분위기와 이로부터 영향을 받은 한국화 비평의 특성과 한계를 말하고 있다. 논쟁의 발단과 전개 과정을 재구성하는 부분은 무척 흥미롭다. 논쟁에서 드러난 주요 쟁점들을 분석하며, 논쟁이 당시 한국화 비평 담론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서술했다. 

 이 논쟁에서 연구자가 지적한 문제에 주목해 보자, 우선 박정희 정권의 ‘민족중흥’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민족적 vs 외래적’, ‘전통 vs 현대’, ‘동양 vs 서양’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 갇혀 작품 자체의 미적 가치보다 이념적 정당성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민족’, ‘전통’, ‘현대’ 개념을 도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있다. 둘째로는 논의 전개에 깔린 권위주의적 경향이다. 사회와 마찬가지로 미술계내에도 특히 한국화 분야에서 권위자에 대한 비판은 실질적으로 금기시되었던 것이다. 개인 한 사람의 비평에 대해 집단의 린치. 이러한 불균형한 구도 속에서 그나마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를 정의하고자 하는 노력 정도가 쟁점으로 살아남았다. 탈식민적 정체성의 구축 과정에서 민족주의적 스탠스는 오히려 극복이 아니라 ‘지나친 의식’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일본스러운가 아닌가, 전통을 계승했는가 아닌가, 이런 단순한 잣대가 너무 크게 작용했다. 

  연구자는 당시의 정치 환경(유신체제)과 사회 환경(급속한 산업화) 속에서 비평 담론이 형성되고 기능하는 과정을 규명하고자 했는데, 원인과 결과, 영향관계를 명쾌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웠던 듯하다. 
  현재 한국화 미술 비평의 상황은 어떤가, 그 뿌리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나, 어떤 성찰이 필요한가에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지만 50년 동안 무엇이 나아지고 발전되었는지 어떤 면에서는 혼란스럽기도 하다. 

업데이트 2025.07.1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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