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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활동한 일본 전각가들과 그 영향

이안나 「일제강점기 인장을 통해 본 한·일 서화가의 교류」, 『한국근현대미술사학』, vol., no.49, 2025,07, pp.7-42.

근대기에 들어서면서 본래의 감상 의미를 넘어 작가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에술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해 작품 안에 본인의 흔적을 적극적으로 남겼고, 전각가 또한 도장 측면에 이름을 새기기 시작했다. 인장은 단순한 서명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면서 인장을 새긴 사람, 주문하고 받아서 찍는 사람, 찍혀진 그림 사이에 관계가 생겨났고, 그림에 찍힌 인장은 그들의 관계와 제작 배경의 단서로 작용하기에 이르렀다. 


일부 서화가들은 중국에 가서 유명한 도장 재료 돌을 사오기도 하고 유명한 전각가에게 자신의 인장 부탁하기도 하는 등의 적극성을 보였다. 그런데 손재형, 오세창, 김규진, 김은호, 이병직 인장을 조사했을 때 특정 일본인 전각가의 이름이 발견됐다. 조선에서 전각 활동을 펼친 일본인이 있었다는 것인데, 그 일본인들은 누구이며 국내 서화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한국 근현대 전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알아보는 논문이다. 

근대 일본 전각계는 청에서 전래된 금석학(金石學) 학풍 영향이 컸고, 특히 서삼경과 오창석이 중심이어서 직접 그들에게 사사받기 위해 중국에 간 인물들이 흐름을 이끌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을 방문한 일본인 전각가들 역시, 이 ‘혁신파’ 계열의 인물들이 주를 이뤘는데 조선에도 이미 청과 조선 문인들 간의 교류가 있었기에 청나라 금석학이 새롭지는 않았겠으나 일본을 통해 재수용된 금석학은 청말의 고증학과 금석학에 기반하되 서삼경이나 오창석 등의 조형미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새로운 양식이 중심이 되었고, 이는 조선 내 전각 예술의 새로운 양식적 전환을 촉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논문에서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활동하던 일본 전각가들 마쓰우라 요겐(松浦羊言, 1885~1931), 이다 슈쇼(飯田秀處, 1892~1949), 오오이시 난잔(大石南山, 1885~1945), 아다치 다쓰히코(足達彦, 1868~1946) 네 사람의 활동을 자세히 소개했다. 

오세창, 손재형, 김영기, 김돈희 등의 인장을 새기며 조선에서 전각가로 가장 많이 활동한 마쓰우라 요겐은 특히 김돈희와 친밀하여 자신의 인보 제작을 부탁해 타계 후 김돈희가 인보 발간을 추진했고 직접 서문을 쓰기도 했다. 




마쓰우라 요겐이 1930년 조선을 떠난 뒤 도착한 이다 슈쇼는 10년간 조선을 왔다갔다하며 활동했다. 이한복, 이병직, 손재형, 전형필 등과 교류하며 활발히 활동했다. 조선에 머무를 때는 이한복의 자택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당시 창성동에 살던 철농 이기우(1921~1993)가 어렸을 적부터 이한복의 집에 드나들며 이다 슈쇼를 통해 전각을 배웠다고 전한다. 


추사 김정희 〈불이선란(不二禪蘭)〉 1850년대, 종이에 먹, 92.9×47.8cm, 국립중앙박물관(손세기·손창근 기증)
이다 슈쇼가 장택상과 손재형에게 새겨준 인장들이 날인되어 있다.


<불이선란도> 우측 중간 ‘불이선실(不二禪室)’ 우측 하단의 ‘봉래제일선관(蓬萊第一仙館)’ ‘소시원선관주인인(小.源僊館主人印)’이 이다 슈쇼의 작품이다.
‘봉래제일선관’은 손재형의 인장, 나머지 두 개는 장택상의 인장.


오오이시 난잔은 넷 중 조선에 가장 장기간 체류한 인물로 본명은 가네다 리치(金田理一)이며, 호는 수봉(秀峯)을 사용했다. 그가 조선 사람들을 위해 새긴 인장 중 확인되는 것들은 현재까지 38방인데 이용문, 이병직, 김규진, 김영기, 전형필, 장택상 등의 것이며 ‘조선신궁’ 어인(御印)을 새기기도 했다. 오오이시 난잔은 경성미술구락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다치 다쓰히코는 직접 조선에 건너 온 적은 없지만 그와 오세창과의 교류 증거가 발견되어 주목되고 있다. ‘석운산방(石雲山房)’이라 인쇄된 인전(印箋)인데 여기 안에 아다치 다쓰히코가 오세창에게 새겨준 인영이 다수 날인돼 있다. 이 자료에는 “명치계묘춘이월(明治癸卯春二月)” 시기가 표기되어 있어 오세창이 일본 체류 중 전각 예술을 수학하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문건에 수록된 〈오세창인(吳世昌印)〉과 〈위창(葦滄)〉 등의 인장은 그동안 오세창의 자작(自作)으로 간주되어 왔는데, 아다치 다쓰히코가 새긴 것이라면 초기 오세창의 전각에 대한 연구에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이어서 이들 전각가들이 가지는 작품 특징을 살피고 이 특징들이 국내 전각가들에게 나타났는지를 분석해 영향관계를 살펴보고자 했다. 이들이 제작한 인장의 인문, 각법, 방각 등의 특징이 조선 서화가들의 작품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 특히 오세창, 이병직, 손재형, 김은호, 전형필 등의 인장에서 일본 전각 양식의 영향이 뚜렷하게 확인된다고 하였는데, 이 논의 전개에 대한 판단은 전각 예술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부족해 어려웠으나, 20세기 전반 한국 서화가들이 사용했던 인장을 한·일 서화가의 교류 등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업데이트 2025.10.20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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