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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기림사 건칠보살상, 그 특징에서 알 수 있는 건칠불의 쇠락

김지은, 「1501년 〈경주 기림사 건칠보살반가상〉 연구」, 『미술사학연구』 Vol. 326., 2025. 06., pp. 129-159.

경주 토함산 동쪽자락에 있는 고즈넉한 절 기림사에는 특이한 보물이 있다. 1965년에 보물로 지정된 <건칠보살 반가상(乾漆菩薩半跏像)>으로, 타래머리 위에 당초물이 화려하게 투각된 보관을 얹고, 얼굴은 둥글고 풍만한데 이목구비는 단아하며, 왼손을 대좌에 짚고 오른쪽 다리는 대좌 아래로 내린 반가좌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건칠불이 매우 적게 남아 있는 데다(20여 구) 단아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고 약 90cm 정도의 높이로 일반적인 보살상에 비해 작은데도 매우 독특한 느낌을 준다. 연산군 7년, 1501년에 제작된 것인데 불상을 받치고 있는 목조 대좌에 묵서명이 적혀 자세한 정보가 전해졌다.

건칠불은 나무 등 골격에 삼베를 붙이고 진흙 또는 여러 번 옻칠을 입혀 형태를 완성한 다음 속을 비워내는 전통적인 건칠 기법을 활용해 제작하는 불상이다.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고 제작 후의 작품이 가볍고 기후의 변화에도 형태가 뒤틀리는 일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의외로 이 소중한 건칠불상에 대해서 단독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었는데 이 논문은 연구자 자신의 석사 논문(2024)을 요약, 보완해 학회에서 발표한 것이다. 사료와 과학조사 결과를 종합했는데, 묵서명의 해석, 16세기 보살상으로서의 기림사 건칠불의 특징, 3D-CT 촬영을 통해 알 수 있었던 제작 기법을 소개하고 이후 건칠불의 제작이 감소하는 양상의 원인을 짚는다. 


대좌의 묵서명


대좌와 압좌 부분


흥미로운 점은 이 〈기림사 건칠보살상〉이 삼베와 옻칠 대신 섬유 반죽을 여러 차례 올리는 기법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통상적인 건칠불상은 긴 건조시간과 복잡한 공정이 필요한데, 섬유반죽을 사용해 제작기간을 3개월로 절감할 수 있었다는 것을 밝혔다. 평균 5개월 안팎의 시간이 소요되었던 조선시대 목조불상 및 소조불상과 비교해도 상당히 짧은 기간이다. 

한국 건칠불상은 대부분 여말선초 100여 년 동안만 유행했고, 〈기림사 건칠보살상〉 이후로 급격히 감소했음을 보여주면서, 이 시기 삼베 생산이 급격히 감소했음을 연관시켰다. 연산군(재위 1494-1506)의 재정 낭비, 물가 상승, 연속적인 흉년 등의 경제난에 더해 불교계에 대한 공식적인 억압이 이어져 대체로 불상 조성 자체가 줄어들었다.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승려들이 활약하고 의승군으로 참여한 일부 사찰을 중심으로 국가의 지원을 받는 등 크고 작은 재건 불사가 이루어졌다. 목조나 조소불로 조성하면서 불상의 대형화로 이어졌다. 특히 17세기 대형 소조불상을 조성한 사찰은 산중에 위치해, 흙과 목재를 수급해 물자 조달에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대형화된 불상은 높아진 불교계의 위상을 보여준다’고 했는데, 반대로 불상의 대형화를 통해 불교계의 위상을 높이고자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당시 목조와 소조로 조성된 불상들은  대개 1~2m 이상이며 3m가 넘는 크기의 상이 조성되기도 했다. 

대형화가 분명한 흐름일 경우 건칠기법은 불상 조성에는 걸맞지 않은 것이었다. 더구나 삼베 생산량이 감소했다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점차 건칠불이 줄어들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좁은 기간에만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불상 제작의 방법이나 지향점이 달라서였을까? 전해지지 않는 것일 뿐 과거에는 많은 양 만들어지기도 했을까? 보물지정 후 논의 없이 금칠이 되어 원래의 분위기는 많이 날아간 듯하지만, 섬세한 표현을 들여다보면 건칠불이 좀더 만들어졌다면 하는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1920년 촬영된 기림사 소조비로자나삼존불상 유리건판사진. 둥근 원 부분이 건칠보살반가상


건칠보살반가상 부분 확대


업데이트 2025.11.12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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