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정, 「안견(安堅) 화풍과 전칭작의 형성: 감식·수장·유통의 동아시아적 맥락」, 『미술사학연구』 (한국미술사학회) vol. 329, , 2026.03, pp.5~39.
조선 초기 최고의 화가로 인정받는 안견(安堅, ?~?)이지만 그의 진작으로 확실하게 인정받는 작품은 일본 덴리대학 도서관에 있는 <몽유도원도>(1447, 세종29년) 단 한 점 뿐이다. 한국과 일본에 20점 정도 전하고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안견 전칭작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
안견 전칭작들을 구분하고 그 형성 맥락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조선 초기 산수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 논문이다.
안평대군의 특별한 후원을 받아 다양한 고화를 대할 수 있었던 안견의 화풍이라고 하면, 북송 곽희 화풍을 근간으로 한 화북계 산수화풍을 받아들여 만들어 낸, 조선 전기의 산수화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0여 점의 작품들이 각각 ‘전(傳) 안견’ 이라 칭해지는 근거는 다양해서, 화풍의 유사성이 적은 경우라도 관서, 문헌 기록, 수장 기록 등으로 전칭작이 된 에가 있다. 일본과 한국땅의 전칭작들의 양상도 차이가 있는데, 일본의 경우 중국의 고화나 무로마치 회화일 가능성 었던 작품들이 있었고,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 후기 김광국의 감식 활동에서 근대에 오세창에 의해 안견화풍이 구축된 케이스가 많다.
이 연구는 동아시아 회화사 속에서 ‘안견 전칭작’이 형성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조선의 화원제도, 문인·왕실 네트워크, 일본의 감정 체계, 근대 미술사학의 제도화라는 폭넓은 상황을 분석한다.
저자는 안견 전칭작들을 세 레벨로 나눈다. 대체로 형성된 시기와 맞물리는 면이 있다.
1. (양식 근거) 15c후반~16c전반에 제작된 조선전기 산수화. 안견화풍의 동시대적 변용
- 침형세수(針形細樹), 단선점준(短線點皴) 등의 요소가 있음
2. (감식, 귀속) 제발, 제화시, 문헌, 상자묵서 등을 통해 안견의 필치로 강화 고정되는 경우.
ex 김광국, 오세창 등에 의해 안견 작품으로 포섭된 작품들
3. (담론, 연구) 근대기 전람회, 학술조사, 전시 등에서 안견의 이름으로 재조명
=> 근대 미술사학 성립기, 안견의 작품이 정전(canon)화 되는 과정과 함께 생겨남.
이 중 안견 진작과의 거리가 가장 가까워 보이는,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 안견 전칭작들도 조금씩 양식적 특징이 다른 유형이 드러난다.
먼저 15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평가되는 작품들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시팔경도> 등이 있는데, 곽희풍에 가까운 산형, 강한 윤곽선, 중량감 있는 주산 배치, 화북계 산수의 장엄한 성격 등 고식적 경향이 두드러진다.
두 번째는 15세기 말~16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작품들이며 자연스러운 단선점준, 담묵의 원경 표현, 연무 안개를 활용한 공간처리가 특징이다. 야마토분카칸 소장 <어촌석조도> <평사낙안도> 후쿠오카시미술관 소장 <산수행려도> 등인데, 이들은 과거에 중국 고화로 여겨지다가 최근에 조선 전기 산수화로 인정되는 분위기가 많아졌다.
이 외에 16세기 전반 또는 그 이후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는 작품들로, 형식화된 표현과 화면구성으로 원대 이곽파의 평면화된 산수쪽으로 변이된 분위기가 강한 작품들도 있다.
야마토분카칸 소장 <어촌석조도> <평사낙안도> 후쿠오카시미술관 소장 <산수행려도>
한편 조선 후기에 안견의 전칭작으로 등장한 작품들은 대개 인장, 관서, 제발, 수장 기록 등을 근거로 한 것이지 화풍으로는 후기의 느낌이 많이 묻어나는데, 당시에도 “세상에는 안견의 가짜 그림이 상당히 많다”(18세기 이용휴)고 할 정도로 위작이 많아진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조선 후기 산수화의 요소들이 강하게 감지되는 여러 작품들이 ‘안견 전칭작’으로 포섭된 데는 18세기 감평 체계의 권위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본에 소장된 안견 전칭작은 조선 회화로 명확히 귀속되기보다, 가라에라는 가치체계 속에서 송·원·명대 고화 및 무로마치 수묵화와 혼재되며 전승되었다. 상자의 묵서, 옛 감정 기록, 모사 관행 등이 혼란을 야기한 경우도 많다. 현재 일본 내 조선 전기 산수화의 발굴에 대해 연구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문청(文淸)의 인장이 있는 <방곽희추경산수도>(규슈국립박물관 소장, 왼쪽)와 『國華』에 소개된 <산수도>(오른쪽) 두 점은 보관 상자와 전승에 근거해 명대 작품으로 소개되었으나 최근 연구에서 안견파 성격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재평가되었다.
20세기 초, 한국미술사의 체계적 서술이 본격화되면서 전칭작도 위작 논란도 늘어났다. 논란의 중심에 오세창의 『근역서화징』(1917)이 있다. 그는 안견을 북송·원대 화풍을 절충해 조선 산수 양식을 창출한 인물로 규정했다. 이후 고유섭, 문일평, 김용준, 세키노 타다시 등이 이 인식을 계승해 <몽유도원도>를 중심으로 안견 화풍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했다.
전칭작의 확대는 위작 논란도 동반됐다. 1990년대와 2000년 무렵 인장과 화제를 근거로 안견 전칭작으로 등장했던 작품이 화풍과 필치의 불일치, 후대에 덧붙여진 것이 분명한 조악한 낙관 등으로 문제되다가 일제강점기 경매도록과의 비교로 인해 부정된 사례도 있다.
1994년 안견작으로 공개되었다가 경성미술구락부도록으로 인해 부정된 <청산백운도>
결론적으로 말해 안견의 작품, 안견의 화풍에 대한 개념은 각 지역의 감식 기준과 가치 질서 속에서 여러 차례 재구성되어왔다는 것이고, 저자는 이러한 방식의 전칭작 연구가 개별 작품 판정 문제를 넘어 조선 전기 산수화의 양식적 계보 재구성. 동아시아 고화 감식이 작동한 방식의 분석, 미술사학 담론 속에서 기억과 정전이 형성되는 과정을 성찰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주장한다.
특정 작품이 진작이냐 위작이냐를 따지기 위해서라도 미술사에서 정전은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해, 좀더 다양한 사례의 분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동의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