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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고립무원의 성보와 성보박물관을 보며 문득

  문화국가의 표상이자 문화복지의 근간인 미술관 박물관 천 곳을 세우자는 구호 아래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고 이제 그 성과가 제법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부동산 정책의 일환으로 느껴질 만큼 ‘건물’에 치중한 나머지 어릴 적 포장은 그럴 듯 했지만, 열어보고 실망했던 ‘종합선물’ 같다는 생각을 지울 길 없다. 이는 지방의 공립미술박물관을 비롯해서 대학박물관과 사립박물관도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라도 개발도상국가 시절의 인식과 사고에서 벗어나 선진국다운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과 정책의 변화가 시급하다. 

그중에서도 사찰에서 설립 운영 중인 성보박물관 또는 기념관, 전시관의 경우는 그 처지가 더욱 딱하다. 사실 요즘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인구가 줄고 종교에 귀의하는 이도 숫자가 줄었지만, 종교를 믿는 신도의 숫자도 매우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불교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카톨릭 등 모든 종교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예전에 교세가 좋았던 시절과는 환경과 조건이 달라지면서 전과 달리 쇠락하여 기본적인 종교시설의 관리 유지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제법 역사가 있는 사찰의 경우 성보박물관 또는 기념관, 전시관을 건립해 사찰이 소장하고 관리하는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유물과 지정 지방문화재 등 귀하고 보배로운 유물을 조사 연구하고 전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실상을 보면 그냥 관리하는 정도이지 그 이상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사찰에 문을 연 불교관련 문화유산의 수집⸱조사⸱연구⸱전시 기관은 통도사 성보박물관이다. 1987년 10월 구 박물관법에 의거 인가를 받아 문을 열었으니 말이다. 물론 통도사의 불교문화유산에 대한 보존과 관리 및 조사연구의 의지는 그 이전인 1954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내 관음전에 진열장을 설치하고 통도사에 전래되어 오던 문화재들을 신도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면서 성보박물관의 역사를 열었다. 이후 소장유물이 늘어나자 1974년 9월 관음전을 확장, 개보수해 유물전시관을 만들었다. 이후 1987년 정식으로 통도사 성보박물관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오늘날 여느 박물관 못지않은 박물관 문화를 선도하는 통도사 성보박물관으로 자리한 것은 1987년부터 통도사 성보박물관장으로 일했던 범하스님(1947~2013)의 역할이 크다. 그는 승려 이전에 박물관학 학자였으며 미술사학자로서 “박물관은 이러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운 이기도 하다.

사실 지금의 사찰박물관은 물론 국공립 사립박물관 미술관이 범하가 세웠던 원칙에 충실했다면 오늘날 크게 걱정을 할 것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통도사 성보박물관이 문을 연 이후 주요 사찰마다 성보박물관 건립이 큰 불사의 하나로 여겼고 여기에 국고와 지방정부가 건립비용을 지원하면서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나 불과 23년 후인 2010년에 이르러 전국에 불교 박물관 34개소, 유물전시관 11곳으로 총 45개관으로 늘어났다. 1년에 거의 2개씩 생겨난 꼴이다. 그리고 2023년 3월 현재 총 49개 관이 있다. 붐을 이루었던 성보박물관 건립이 주춤해진 것은 정부의 지원이 엄격해진 탓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2002년 템플스테이가 붐을 이루고 정부 지원도 늘어나자 많은 사찰이 그쪽으로 눈을 돌린 탓도 크다. 

오늘날 각각의 성보박물관이 제대로 박물관으로서 운영되고 있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몇몇 사찰의 성보박물관을 제외하고 보면 대부분의 박물관은 박물관이라기보다 유물창고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유물의 수장관리를 위해서는 전시실에 대한 24시간 항온항습과 보안이 필수적이다. 유물을 보관하는 수장고는 전시실과 마찬가지로 24시간 항온항습은 물론 유물을 적재 또는 보관할 함과 장이 필수적이다. 또 유물의 훼손을 막기 위해 미생물이 서식할 수 없도록 방충 방재도 정기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게다가 사찰박물관의 경우 대개가 산속에 자리한 탓에 습도가 높아 더욱더 방습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찰박물관은 이런 기본적인 작품의 현상유지를 위한 시설을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24시간 항온항습용 설비 운용에는 많은 전기료가 들기 때문이다. 앞으로 전기료가 인상되면 항온항습시스템의 가동을 멈추어야 할 박물관은 굳이 사찰박물관만의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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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중요한 문제는 사찰박물관의 전문인력확보이다. 학예연구사(Curator)를 비롯한 작품등록 및 관리사 (Registrar), 작품수복보존가(Conservator) 등등의 전문 인력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런 전문인력을 확보한 성보박물관은 거의 보지 못했다. 사실 사찰은 도심과 제법 거리가 있어 민간의 유능한 전문인력 확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리고 설혹 고용한다 해도 태부족인 것이 현실이다. 모든 박물관의 기본 중 기본은 유물 즉 소장품을 조사연구하고 이를 토대로 조사연구 해 대중들과 전시와 도록을 통해 교감하는 일이고 이것은 사찰 박물관도 예외가 아니다. 만약 이러한 대중과의 교감이 빠진다면 박물관은 단순히 유물보관소에 지나지 않게 된다. 즉 창고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지금부터 제법 오래전인 2011년 조계종은 조계종 문화부와 불교중앙박물관, 중앙종회 사회분과위원회로 구성된 공동조사단을 구성해서 34곳에 이르는 성보박물관을 조사한 결과 학예연구원 이상 전문인력을 채용한 곳이 14곳, 박물관 예산을 별도 항목으로 편성한 사찰이 3곳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 변변하게 기획전시실과 상설전시실을 겸비한 곳도 어떤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소장품 도록은 서너 곳 밖에 발간하지 않았다. 기획전시는 꿈도 못 꾸고 상설전시는 개괸아래 지금까지 바뀌지 않고 그대로다. 박물관학이라고는 일절 경험도 공부도 해본 적 없는 스님들이 돌아가면서 관장직을 맡는다. 그러다 보니 박물관의 유물들이 병 들고 좀이 슬어도 모른다. 조계종의 경우 임기가 4년인 주지스님들이 임기중 치적으로 박물관은 건립했지만 임기가 끝나고 그들이 떠난 다음에는 마치 어미 잃은 어린 양처럼 고립무원의 상태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는 물론 거개의 대한민국 공립박물관과 미술관도 같은 처지니 굳이 성보박물관만 나무랄 일은 아니다. 또 이 조사에 의하면 34곳 중 9곳이 휴관 중이었다. 또한 박물관 미술관 진흥법에 의거해 지방자치단체에 등록을 한 사찰산하의 성보박물관은 30여관 중 15개관에 불과해 동법 24조의 경비 보조 등도 받을 수 없는 곳이 절반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이후의 통계는 찾아볼 수 없어 각종 자료를 취합해서 재구성해야 할 정도로 성보박물관의 실상을 파악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성보박물관의 육성을 위해서는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사실 국가의 지원보다는 민간의 기부가 우선되어야 한다. 외국의 경우도 대부분의 박물관 미술관이 민간의 지원과 후원, 기부로 운영되는 것을 감안하다면 성보박물관도 정부의 지원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기부금 유치 등 자구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사실 현재 사찰에서 운영하는 성보박물관의 경우 전문인력도 문제이고 건립 연한이 20여 년 지난 경우 항온, 항습 등의 설비가 낡아 교체가 시급한 것도 문제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보완되지 않으면 성보박물관에 수장된 유물의 안위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것은 사찰의 건립 이후 문제, 즉 운영계획과 연간 유지운영비에 대한 적정한 추산, 운영비 확보방안 등의 검토 없이 너도 나도 건립에만 열을 낸 것이 원인이다. 지금도 개인사찰의 경우 국보 또는 보물급의 불교문화재를 구입하여 이 유물의 보존과 전시를 위한 성보박물관을 건립하겠다고 국고와 지방비를 신청하는 사례도 있다 하니 하루빨리 사찰의 성보박물관에 대한 규제와 운영실태 파악, 평가 그리고 이 결과를 토대로 한 지원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향후 성보박물관 건립을 직접 지원하기보다는 종교활동을 위해서 필수적인 유물의 경우 예외로 하더라도 그 외의 사찰 소장유물은 사찰이 소재한 지역의 국립박물관 지방관에 기탁(Deposit)하는 것은 어떨까. 일정기간 동안 유물의 관리를 전문기관에 위임하여 중요한, 의미있는 종교적인 유물의 유실이나 훼손을 막고 전문적인 조사연구인력이 확보된 기관에서 심도있는 연구를 통해 여타의 문화재와 문화적, 역사적 관계를 입증하고 복원 또는 해석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면 이는 성보박물관을 세우고 운영하는 일보다 더 의미 있는 일 아닐까. 성보박물관을 제대로 운영하는 데 힘이 부친다면 더욱이 말이다. 특히 많은 박물관 방문객이 박물관에서 불교관련 유물을 감상하면서 불교의 의미를 되새기고 이를 통해 종교에 귀의하는 기회가 된다면 포교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사찰에 갈 때 마다 들러보는 성보박물관이 쇠락해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성보박물관의 설립 열기가 식어가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이 도회로 내려오시는 것이 힘들다면 사찰이 소장한 유물을 박물관 기탁 형식으로라도 속세에 내려보내 포교하는 것은 어떨까. 부처님을 뵈러 어느 사찰을 찾았다가 힘들어 하는 성보박물관이 눈에 들어와, 제대로 지키고 기르지 못할 처지라면 믿을 만한 곳이나 사람에게 맡기는 것도 방법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업데이트 2023.04.10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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